"사업 초창기에는 1m 화이트 보드를 들고 다니며 고객을 만났고, 수없이 많은 거절을 당했죠. 20년이 지난 지금은 개인 섬을 사는 꿈을 위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여파에 은행권 구조조정이 본격 시작된 2001년. 이름도 생소한 명예퇴직이라는 명목으로 선배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나자 당시 38세였던 김 대리는 "제2의 인생을 설계하자"는 결심을 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직접판매 사업을 접한 김 대리는 '투 잡'을 뛰며 사업자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처음에는 "불법 피라미드 아니냐", "외국산을 왜 쓰느냐"며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지만 제품에 대한 확신과 성공에 대한 자신에 외길을 걸었고 어느덧 20년 차 베테랑 사업자로서 성공을 거뒀다. 한국암웨이 다이아몬드 등급 사업자 김광일(58)씨 이야기다.
김광일 씨는 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00년대 초반에는 불법 피라미드 업체와 직접판매 업체 간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인식이 낮았다"며 "암웨이를 알리기 위해 큰 보드와 책, 제품을 직접 들고 다니며 열성을 다한 게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김 씨는 대리급 은행원이었던 2001년 암웨이 사업을 시작했고, 20년이 지난 2021년 직장에서 은퇴하며 전업 암웨이 사업자가 됐다. 당시 연봉 3000만 원이었던 김 씨에게 암웨이 사업자로서의 성공은 또 다른 도전으로 다가왔고, 은퇴 후 삶을 처음으로 고민해야 했던 시대 상황과도 맞아떨어졌다.
가장 큰 과제는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일이었다. 일명 '옥장판 다단계'로 대표되던 불법 업체와 1959년 창업해 이미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한 암웨이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는 게 일이었다. 이를 위해 김 씨는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지 않고, 3년간 암웨이에 대해 공부하는데 몰두했다. 그는 "세미나에 100% 참석해 자신부터 설득하고 이해시키려 노력했다"며 "수많은 거절에 익숙해지기 위해 자존감을 높이는 연습도 잊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중 한 이름 모를 고객과의 만남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어느 날 은행에 오신 할머니 고객 한 분이 암웨이 건강기능식품을 들고 있어서 그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암웨이 약’이라고 하더라고요. 다리가 아파서 먹는데, 없으면 못 살 정도라고. 앞으로 판매할 암웨이 제품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는 순간이었죠."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직접판매 사업에 대한 마음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첫 번째 파트너 사업자이자 가족인 처제를 설득하는 데만 꼬박 2년이 걸렸다. 이때 도움을 준 건 아내인 배명덕(53)씨다. 김 씨가 고객에게 암웨이 사업을 소개하면, 배 씨는 두 발로 뛰며 직접 제품을 소개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부부간 시너지가 나면서 사업은 점차 커졌고, 최근에는 부산을 넘어 순천까지 지역을 확장하는 성과를 냈다. 전업주부였던 배 씨에게도 암웨이 사업은 제2의 인생을 위한 전환점이었다. "어릴 땐 책도 많이 읽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TV 드라마에 꽂혀 살았죠. 처음 암웨이 세미나를 갔는데 저와 같은 주부 6~7명이 필기하며 공부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 길로 드라마를 끊고 잃었던 자신의 모습을 찾는 데 집중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배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로 대면 영업이 어려워지자 김 씨와 배 씨는 화상회의 프로그램인 '줌 비디오 커뮤니케이션'과 파워포인트 등 업무 프로그램을 배워가며 비대면 영업에 도전했다. 시대가 변하면 우리도 변해야 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이는 곧 성과로 이어졌고, 김 씨와 배 씨는 다이아몬드에 이어 수석 다이아몬드 등급까지 도전할 수 있게 됐다. 은퇴 후 암웨이 사업을 꿈꾸는 예비 사업자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작은 것들이 모여 결과를 만드는 것처럼, 단기간에 승부를 가져가려고 하지 않는 게 중요 합니다."
김 씨의 개인 꿈은 무인도를 하나 구매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부부는 "아침만 같이 먹고, 점심과 저녁은 사업자들과 먹자"는 굳은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각자 1년간 만난 새 파트너 수만 100여 명이 넘는다.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암웨이 사업을 통해 삶의 활력소를 찾았습니다. 꾸준히 정진하다보면 언젠간 '김광일 섬'을 사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