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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교 칼럼]美 반도체 보조금 독소조항 해법은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일정 수익땐 보조금 75%까지 반납

中 투자 제한·기술보안 등도 문제

국내기업들 美·中 사이서 진퇴양난

EU·日·대만과 '독소조항' 공조해야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이 2월 말 약 50조 원 규모의 반도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공개했다. 이 보조금은 지난해 8월 제정된 ‘반도체지원법’에 근거한 것으로 미국은 반도체 생산 공급망을 국내에 구축하기 위해 보조금을 인센티브로 사용하기로 했다. 러몬도 장관은 “보조금을 받으려면 미국에 기여해야 한다. 어떤 기업에도 백지수표를 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조건을 보면 고약한 독소 조항이 많다. 2000억 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일정 수준을 넘는 수익을 거두면 보조금의 최대 75%까지 반납하도록 했다. 영업이익을 많이 남기면 실질적으로 받는 보조금이 당초 예상보다 줄어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기업의 회계장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가드레일 조항에 따라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중국에 대한 투자에 제한을 받는다. 중국에 반도체 생산 설비를 가동 중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실험·생산 등 시설 접근을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을 찾는다’고 명시함으로써 기술 보안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반도체 시설 공개에 대해 업계는 상식 밖의 독소 조항이라고 지적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 언론에서는 초과 이익 환수 방칙에 대해 보호무역주의를 넘어 좌파적 발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EU 역외 보조금 규정 이행법’을 통해 외국의 보조금 정책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7월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인수합병(M&A)이나 공공 입찰에서 보조금을 받는 외국 기업의 참여를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산업 정책으로 활용돼온 보조금에 대해 보호무역 조치를 발동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보조금을 받으면 EU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독소 조항도 문제인 데다 실질적인 보조금 규모가 줄어들 수 있기에 아예 보조금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반도체지원법 보조금을 신청하려는 기업들의 셈법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국내 기업들이 보조금을 신청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 시장 접근과 중국 내 설비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은 수출 통제 제도, 특히 해외직접생산품규정(FDPR)을 통해 반도체 생산 공정의 핵심 부분을 통제하고 있다. 앨런 에스테베즈 미 상무부 수출통제 차관은 2월 23일 중국에 가동 중인 국내 반도체 기업의 기술 수준과 생산량에 대해 새로운 규제를 도입할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국내 기업의 대미 투자를 수차례 치켜세운 상황에서 미국의 반도체 정책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예상되는 결과를 기업들은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국내 반도체 기업은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무장관의 발표 내용을 보면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도를 넘어선 것은 사실이지만 대선 후보 반열에 있는 정치인 상무장관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기보다는 정치적인 수사가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과다 이익 환수 등과 같은 독소 조항 외에 기술자 양성, 탁아 시설 설치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미 연방정부의 보조금이 당초 목적에 맞게 미국 내 공급망 확충에 제대로 쓰여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보조금 취지에 맞게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하는 경우에는 불이익이 없도록 상세 규정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경제안보 및 통상 당국이 워싱턴DC를 방문해 관련 기관과 협의를 지속하고 있고 4월 한미정상회담도 예정돼 있다.

반도체는 미국 기술 안보 정책의 핵심이고 우리나라와의 협력 없이는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정치색이 짙은 상무장관의 보조금 기준 발언이 과도하고 야속하지만 한미 간 경제안보적 관점에서 논의할 경우 상호 윈윈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와 입장을 같이할 수 있는 EU·일본·대만 등 여러 국가들이 공조해 독소 조항을 최소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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