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 공관으로부터 100m 이내 야외 집회·시위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해당 집시법 조항이 ‘과도한 제한’인 데다 ‘집회의 자유도 침해한다’는 게 헌재가 내린 결론이다.
헌재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집시법 11조 2·3호 등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했다고 23일 밝혔다. 해당 조항은 국회의장 공관 100m 이내에서 집회·시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또 이를 위반할 경우 집회 주최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법 불합치는 법 조항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해당 조항을 즉각 무효로 만들었을 때 초래될 혼선을 막기 위해 법 개정 때까지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법률을 즉각 무효로 하는 위헌과 달리 유예기간을 두고 법 개정을 유도한다. 이번에 헌재가 집시법에 대해 정한 법 개정 시한은 2024년 5월 31일로 이때까지 국회가 법을 바꾸지 않으면 심판 대상 조항은 효력을 잃는다.
헌법재판은 서울서부지법이 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받아들인 데 따라 열렸다. 해당 피고인은 2019년 12월 국회의장 공관 정문 앞에서 약 30분간 구호를 외치는 등 시위를 했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집시법 11조 2·3호 등 조항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고 헌재의 판단을 구했다.
헌재는 “심판 대상 조항은 국회의장 공관 일대를 광범위하게 전면적인 집회 금지 장소로 설정했다”며 “입법 목적 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넘는 과도한 제한”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국회 공관에 직접적인 위협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 100m까지 집회·시위를 금지했다는 점도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대규모 집회가 아닌 이상 국회의장 공관까지는 거리가 멀어 집회·시위자들이 공관 진입을 시도하는 등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폭력을 행사하거나 업무를 방해하는 등을 범죄행위로 규정해 형사법상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점도 사유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위험한 상황이 예상될 경우 집회를 금지하거나 실제 발생했을 때는 행위자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존재해 집회를 허용하더라도 국회의장 공관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헌재는 “(현행 집시법의) 금지는 단순한 장소적 제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집회 자유의 핵심적인 부분을 제한하는 것”이라며 “심판 대상 조항으로 달성하려는 공익이 제한되는 집회의 자유보다 크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로써 헌재가 집시법상 집회 금지 구역 해제를 결정한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앞서 헌재는 2003년 국내 주재 외국의 외교기관, 2018년에는 국무총리 공관과 각급 법원 인근에서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놓았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의 집회를 예외 없이 금지한 집시법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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