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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청년 없는 뿌리산업, 흔들리는 제조 강국

김민형 성장기업부 부장





“주 60시간 근무제 논의에 대한 MZ세대 직원의 반응이요? 우리 회사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 회사에는 MZ세대 직원이 없거든요.”

최근 경제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근로시간제도 개편에 대해 한 중소기업인에게 의견을 묻자 한숨과 함께 돌아온 답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질문을 한 것 같은 느낌에 머쓱해졌다. 한숨을 통해 전해지는 절망감에는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근로시간제도 개편은 대통령이 직접 MZ세대를 언급하며 여러 번에 걸쳐 의견을 냈고, 고용노동부는 연일 MZ노조·경영계 등과 간담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핫이슈다. 하지만 MZ세대 근로자가 없는 중소기업에는 남의 일일 뿐이다.

실제 인력난에 허덕이는 일부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근로시간 따위를 논할 처지가 아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중소기업 부족 인력은 56만 명으로 전년 대비 11.7% 늘었다. 특히 뿌리산업은 청년들이 유입되지 않은 지 오래돼 고령화가 심각하다. 뿌리산업은 주조·금형·용접 등 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산업이다.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에 따르면 2020년 말 전체 뿌리산업 종사자의 64.4%가 40대 이상이다. 50대 이상 비율은 2018년 26.7%에서 2020년 31.5%까지 높아졌다.



제조업은 청년들 사이에서 노동집약적이고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인식이 강하다. 취업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린 지 오래다. 중소기업 부족 인력이 56만 명에 달하지만 지난달 구직·진학 준비 등을 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 중 청년(15~29세)은 49만 7000명으로 2003년 통계 집계 이후 최대였다. 부모의 경제력 덕분에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MZ세대는 자신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일자리에 도전하기보다 차라리 쉬어버리는 것이다.

어쩌다 중소기업에 도전하는 청춘들이 있지만 얼마 못 가 돌아서기 일쑤다. 잡코리아가 지난해 신입 직원을 채용한 중소기업 160개사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1년 안에 퇴사한 신입 직원이 있느냐’고 묻자 87.5%가 ‘있다’고 답했다. 퇴사 이유로는 복수 응답 기준으로 ‘업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기 때문(45.7%)’ ‘직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41.4%)’가 가장 많았다.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고 취업했는데 막상 해보니 못하겠어서 그만둔다는 얘기다. ‘기업 문화가 맞지 않다(22.9%)’거나 ‘연봉이 낮다(17.9%)’는 경우는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계에서는 “청년들이 구직급여를 타기 위해 중소기업 취업을 활용한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정도다.

제조업의 만성적 인력 부족은 필연적으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의존도를 높인다. 이미 물고기잡이와 배추 수확은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불가능하다. 문제는 제조업의 경우 외국 인력 의존도가 심화하면 숙련 기술 전수가 중단돼 우리나라의 제조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귀국한다. 숙련공은 계속 모자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숙련 기술의 국내 전수가 이뤄지지 않으면 ‘장인 기술’도 명맥이 끊긴다. 비단 중소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표 수출산업인 조선 업계는 올해 10년 만의 호황을 맞았지만 용접·열처리 인력이 모자라 선박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올해만 국내 조선업 부족 인력이 1만 명가량이라고 한다.

주 60시간 근무든, 69시간 근무든 일할 사람이 있어야 근로시간에 의미가 있다. 턱없이 부족한 인력을 돌려 납기를 맞춰야 하는 중소 제조 업계의 경영자는 언제든 범법자로 몰릴 위기에 노출돼 있다. 동시에 하루가 다르게 ‘제조 강국’ 대한민국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대기업 MZ세대 입장을 고려한 근로시간제도 개편도 좋다. 하지만 MZ세대가 없는 중소 제조 업계에 어떻게 청년을 공급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정책 마련도 시급하다. 우리의 제조 기술이 다음 세대로 이어져 발전하지 않는다면 제조 강국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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