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고광본 선임기자의 관점] 의료 게임체인저 첨단 바이오…규제 혁파 통해 디지털 강국 이점 살려야

◆첨단 바이오헬스케어 현주소와 과제

바이오프린팅·재생의료 등 맞춤형 첨단의료 급속 진화

미래 성장동력 부상에도 미·중·일과 기술 각축 버거워

건강정보 적극 활용·규제 혁파 통해 퍼스트무버 돼야

“국가적 R&D투자·산학연병 유기적 혁신 생태계 절실”





# 24일 서울대병원 혁신의료기술연구소에서 열린 ‘바이오프린팅재생의료연구회’ 창립 기념 심포지엄. 이곳에서 3D바이오프린팅 벤처기업인 로킷헬스케어 측은 당뇨병으로 발이 썩는 당뇨발 치료의 우수한 임상 능력을 설명했다. 면역 거부 반응을 없애기 위해 환자의 지방을 추출해 바이오잉크를 만든 뒤 3D바이오프린터로 손상된 장기에 대한 맞춤형 복원을 시도한다. 이 회사는 당뇨발과 무릎연골 치료 등 피부 재생치료 플랫폼을 구축해 해외 수십 개국에서 임상을 진행해왔다. 만성 신부전 환자 임상까지 치료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유석환 로킷헬스케어 회장은 “우리나라가 전통 제약·바이오 분야에서는 글로벌 제약·바이오헬스케어사에 비해 경쟁력이 뒤처져 바이오프린팅·재생의료 같은 첨단 바이오 분야로 차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전통 제약·바이오 시장의 후발 주자였던 우리나라가 디지털·융복합 기술을 활용해 맞춤형 첨단 바이오헬스케어 시장에서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환자에게 맞는 디지털 치료제, 혁신 영상기기·체외진단기기, 세포·유전자 치료제 등의 연구개발(R&D)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패스트팔로어(빠른 추격자)’ 입장에서 일정 부분 ‘퍼스트무버(선도자)’군에 합류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첨단 바이오헬스케어 시장을 키우려면 R&D 확대, 국민 건강정보 활용, 규제 혁파, 산학연병(産學硏病)의 유기적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대희 서울대 의대 미래발전위원장(바이오프린팅·재생의료연구회장)은 “바이오헬스케어 연구자들이 다른 영역을 들여다보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융합연구 환경을 갖춰야 한다”며 “방대한 건강정보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고 혁신 제품·서비스의 시장 진입이 용이한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바이오헬스케어 집중하는 미·중 추격 버거워

세계 제약 시장 규모는 2021년 1조 4200억 달러로 세계 반도체 시장(5300억 달러)의 2.7배다. 고령화 추세로 디지털·AI·빅데이터·3D프린팅 등과 연관된 첨단 바이오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보여 바이오헬스케어 시장의 성장세도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국가들이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바이오헬스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전략과 법·제도 정비에 나선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다.

세계 바이오헬스의 허브 격인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9월 ‘바이오 자국화 생산 정책’을 발표한 뒤 바이오 R&D뿐 아니라 제조까지 역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도전적 보건의료 R&D 전담 기구인 ARPA-H도 설치했다. 이미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는 1000여 개의 글로벌 제약사와 벤처스타트업, 우수 인재의 산실인 MIT·하버드대·보스턴대, 국립보건원(NIH) 연구기금 상위 1~3위를 차지할 정도의 연구 역량을 가진 병원(총 21개), 멘토 역할을 하는 민간 투자사까지 아우르는 혁신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AI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보이는 중국은 광범위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공격적으로 ‘바이오 굴기’에 나서며 시너지를 높이고 있다. 바이오 분야의 전통 강자인 유럽의 경우 첨단 바이오에 대한 능동적인 규제 환경 구축 등 생태계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2019년부터 기존 기술의 연장이 아니라 대담한 발상에 근거한 도전적 R&D인 ‘문샷(Moonshot)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바이오헬스 시장 창출의 기반을 마련해가고 있으나 아직은 미국·유럽·중국·일본 등에 비하면 혁신 생태계 측면에서 척박한 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 회의를 열어 앞으로 5년 내 연 매출 1조 원 이상의 블록버스터급 신약 2개 창출, 의약품과 의료기기 수출 각각 2배 확대(각 160억 달러), 디지털·데이터·AI 활용 신의료기술 개발과 시장 창출 등을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셀트리온 등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은 바이오시밀러(복제약) 39개 중 9개를 차지할 정도로 복제약에서 약진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바이오의약품 위탁 생산 역량도 키우고 있다. 은성호 보건복지부 첨단의료지원관은 “AI와 연계한 질환별 의료·바이오데이터를 구축해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의 기술사업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첨단바이오 급부상에도 혁신 생태계 미흡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우리나라는 효과적인 환자 추적·알림 시스템, 진단키트 등에서 해외에 깊은 인상을 남겼으나 끝내 백신 등을 내놓지 못했다. 따라서 이제는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많다. 우리 제약·바이오사들이 신약 개발에 나서고 있으나 여전히 복제약 중심이라는 점에서 뇌과학이나 디지털 치료 기기, 재생의료·조직공학 같은 첨단 바이오에 역량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고령화 현상 등으로 인공장기 시장이 커지고 있어 3D바이오프린팅·재생의료도 유망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베리필드마켓리서치는 세계 3D바이오프린팅 시장이 2021년 1조 원에서 2030년 5조 7000억 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철원 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바이오프린팅·재생의료는 국내 의료 산업의 위상을 키울 게임체인저”라며 “바이오프린팅을 활용한 국내 연골재생 기술은 관절염 치료 수요 급증에 대응하는 획기적 대안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구혁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원천연구정책관은 “바이오와 디지털이 융합하면 전통 바이오 기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거들었다.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대체육·배양육 같은 푸드테크, 천연물 R&D, 장내 미생물을 활용한 마이크로바이옴 등 그린바이오도 떠오르고 있다. 미생물로 바이오에너지·플라스틱 등을 만들어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합성생물학을 비롯한 화이트바이오도 유망하다.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분석이 많다. 우리나라는 의사의 실력이나 디지털 기술 측면에서 세계적 수준이나 의사과학자가 부족한 데다 진료의사의 R&D 마인드도 떨어지고 의료·바이오헬스케어 산학연 간 융합연구도 미흡하다. 팬데믹 상황에서 전화 상담 등 제한적으로 허용돼온 원격진료도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아 여전히 정부와 의료계 간에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사질환의 원인을 연구하는 의사과학자인 최형진 서울대 의대 교수는 “우리는 아직 의사과학자 양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다 진료 현장의 의사가 충분한 시간을 연구에 집중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며 산학연병의 의료기술 R&D 연계와 기술사업화 활성화를 위한 혁신 생태계 조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산학연병 협력, R&D 확대·규제 혁파 시급

우리나라는 1997년 말 외환위기로 촉발된 우수 인재의 의대 쏠림 현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료와 수술을 하고 약을 처방하는 임상(치료)의사가 대부분이다. 의사면허(MD)를 딴 뒤 기초의학이나 의약품, 의료기기·장비를 연구하는 의사과학자, 환자를 보면서 R&D를 병행하는 임상(치료)의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의대의 교육 커리큘럼도 아직은 의과학이나 기술사업화는 뒷전인 채 임상의사 양성에 초점을 맞춘다. 영국 대학평가기관인 QS가 최근 발표한 ‘세계 대학 평가 의학 분야 순위’에서 우리나라의 서울대 의대만 37위를 기록하고 다른 대학은 50위 안에 들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등 해외에서는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의 약 40%가 의사다. 의사 출신 의대 교수의 창업도 활발하다. 글로벌 10대 제약사의 최고기술책임자(CTO) 중 약 70%도 의사과학자다.

김하일 KAIST 의과대학원 교수는 “세계 바이오헬스 산업에서 우리의 시장점유율이 2%를 넘지 못한다”며 “기존 의대를 활용하는 것은 물론 과학기술특성화대에 의대를 만드는 등 의사과학자 양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연간 세계의 제약과 의료장비 시장이 각각 1조 달러, 5000억 달러나 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바이오헬스에서 세계 10대 경제 강국에 걸맞은 위상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유 회장은 “해외에서 임상을 하면 우리 의사의 수준이 미국·유럽보다 높은데 정작 의약품과 장비 시장에서는 외국산을 쓴다”며 “EU·미국·일본·한국 순으로 규제가 탄력적인데 우리도 과감히 규제를 혁파하면 맞춤형 의료 등 첨단 바이오 시장을 키울 수 있다”고 자신했다.

혁신 의료기기의 임상·허가, 건강보험 수가 책정 측면에서도 국내의 대응이 능동적이지 못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혁신 수술로봇을 개발하는 엔도로보틱스의 김병곤 대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혁신 의료기기 허가를 받고도 가격이 정해질 때까지 사용을 못 한다”며 “가격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서 기존 의료기기의 최대 90%밖에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미국·대만·일본·유럽 등에서는 허가를 받으면 개발사 책임하에 환자가 선택해 쓰도록 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식약처·국민건강보험공단·보건의료연구원 등의 복잡한 규제로 혁신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첨단 바이오헬스 육성 과제

·뒤처진 전통 제약·바이오→절대강자 없는 첨단바이오 전환

·의대 커리큘럼 혁신, 의사과학자 양성과 의사의 R&D 병행

·혁신 R&D 체계 구축, AI·디지털·빅데이터 융합연구 활성화

·첩첩산중 규제 타파, 혁신 시도시 탄력적 임상·수가 시스템

조인호 부처의료기술개발사업단장은 “재생의료 분야 등 첨단 바이오의 R&D 과제는 요즘 산학연병 범부처 연계 사업을 많이 유도하는 편”이라며 “장기적으로 연구비를 지원하고 효과적으로 임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되 허가, 수가 책정에도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종원 가톨릭대 의대 명예교수는 “기초연구는 대학과 연구소·병원이 기업과 함께해야 효과적”이라며 “임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많은 상황에서 임상 장벽이 높은 현실을 고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성근 서울대병원 혁신의료기술연구소장은 “의사과학자로서 안정적 연구 환경을 조성하고 산학연병의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