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구속 기로에 몰리며 방통위가 현직 위원장 유고 위기를 맞았다. 한 위원장이 구속을 피하더라도 검찰 기소가 예정돼 있어 국가공무원법에 따른 직위해제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한 위원장의 임기가 넉 달가량 남아있지만 이미 정치권에서 차기 위원장 하마평이 무성하다. 여기에 안형환 부위원장과 김창룡 상임위원의 임기가 조만간 도래돼 위원회 구성이 크게 달라진다. 윤석열 정부 출범 1년이 지나 야당 우위의 위원회 구성이 바뀌게 될 전망이지만 정부·여당과 야당의 정쟁 속에서 방통위의 독립성 훼손에 대한 우려가 크다.
서울북부지법은 29일 한 위원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을 진행했다. 앞서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박경섭 부장검사)는 22일 한 위원장을 소환조사한 후 24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한 위원장은 2020년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 당시 TV조선의 평가 점수를 고의로 감점하는데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날 한 위원장은 “개인적으로 억울하고 당황스럽지만 영장실질심사에서 최선을 다해 무고함을 소명하겠다”며 “점수 수정 지시는 영장에 포함되지도 않았고 수정된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취지에 대해서도 부인한다”고 강조했다.
방송통신 업계와 정치권에서는 한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될 가능성을 좀 더 높게 점치지만 구속 여부와 관계 없이 검찰 기소가 확실한 만큼 오는 7월 말로 예정된 임기까지 위원장 직위를 유지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국가공무원법에 따르면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경우 직위 해제가 가능하다. 한 위원장은 정무직 공무원인데다 ‘방통위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는 관련 근거가 없어 해석이 나뉘지만 여당에서는 이를 근거로 한 위원장 해임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한 위원장을 끌어내리고 싶은 여당은 구속보다도 기소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전했다.
한 위원장은 방통위 독립성을 위해 임기를 다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미 차기 위원장에 대한 하마평이 오가고 있다. 서울고검장을 지낸 김후곤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변호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의 김홍일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이동관 대통령 대외협력특별보좌관 등이 위원장 후보로 거론된다. 김후곤 변호사는 윤석열 대통령과 대검찰청에서 함께 일한 측근이며 김홍일 변호사는 윤 대통령 멘토로 꼽히는 인물이다.
위원장이 사법 리스크를 겪는 사이 방통위 구성이 급속도로 재편된다. 국민의힘이 야당 시절 추천한 안 부위원장이 30일 임기 종료를 맞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추천한 김창룡 상임위원은 내달 5일로 임기가 끝난다. 방통위는 장관급인 위원장과 차관급 상임위원 4명 등 총 5명으로 구성된다. 대통령과 여당이 위원장을 포함한 3명을, 야당이 2명을 추천해 국회 본회의를 거쳐 임명되는 구조다.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몫이라며 안 부위원장의 후임으로 최민희 전 의원을 내정하자 반발했던 국민의힘은 수용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전 의원이 상임위원이 되면 방통위원 구성이 일시적으로 정부·여당 1명과 야당 몫 4명이 되지만 김창룡 위원과 한 위원장의 후임을 윤 대통령이 추천하면 정부·여당 3명과 야당 2명으로 역전되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방통위원 구성에서 우위를 점하고 공영방송 개혁에 나서고 싶을 것”이라면서 “태생적으로 정부·여당으로 기울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 조직이지만 방송통신 규제와 이용자 보호를 위해 독립적으로 운영돼야 할 방통위가 정쟁 공간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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