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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대항전…집중 지원으로 산업정책 패러다임 바꿔야 생존” [어떻게 지내십니까]

◆현오석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미중 패권 경쟁·경제안보 동행 시대, 각국 산업정책 부활

미래·안보 좌우하는 전략산업 적극 지원하되 투명성 필요

글로벌 금융 리스크 전이 때 신속 대응 가능하게 준비를

시대 안 맞는 노동·교육·연금 제도 수술해 생산성 높여야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高) 파고에 경기 침체 공포까지 몰아치고 있다. 무역수지는 12개월째 적자이고 잠재성장률은 2% 붕괴에 직면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살얼음판이다. 현오석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9일 “고금리, 탈세계화, 생산성 하락이 맞물려 우리 경제가 고전하고 있다”며 “특정 전략산업을 집중 지원하되 투명하게 하는 방향으로 산업 정책의 패러다임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중 패권 전쟁으로 각국이 산업 정책을 부활시켜 국가 대항전을 벌이고 있으므로 우리도 변해야 한다”며 “새로운 산업 정책은 인구 감소와 잠재성장률 하락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을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가 2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안보 동행 시대를 맞아 특정 분야를 집중 지원하되 투명하게 하는 방향으로 산업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공직을 떠난 뒤 어떻게 지내시는지.

△4~5년 동안 국립외교원 석좌교수를 지낸 뒤 연세대에서 강의를 했고 일반 특강도 좀 했다. 서울대 상과대 출신의 장·차관과 언론인들이 참여하는 포럼도 운영하고 있다. 현직 고위 공무원을 초청해 정책 방향을 들어보고 의견을 교환한다.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

△코로나19 전에는 테니스를 쳤다. 요즘은 집 주변 탄천을 걷거나 지하철을 이용하며 하루 1만 보를 채우려고 노력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세 가지 상황이 맞물려 경제팀이 상당히 어려운 환경에 직면했다. 첫째, 경기는 침체되는데 미국이 고금리 정책을 지속해 경제 사이클 측면에서 어렵다. 둘째, 미중 갈등 첨예화로 세계 경제 질서가 세계화에서 탈세계화로 바뀌고 있다. 셋째, 우리나라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다. 인구 성장이 멈췄고 생산성도 떨어지며 반도체 외에 선도하는 특별한 신산업이 없다. 삼각 파도에 휩쓸려 금융 불안정성이 길어질 것으로 본다. 지진에 여진이 따르는 것처럼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 같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우리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높은 만큼 늘 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재정·금융 당국이 잘 협조해야 한다. 또 필요한 상황이 오면 미국처럼 아주 빠르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 유동성을 투입하고 불안감이 은행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구가 감소세로 전환돼 세수는 줄고 복지 수요는 급증해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는데.

△전 세계가 노령화하고 있다. 특히 우리는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다. 다자녀 보조금, 학비·주거비 지원 등 경제적 유인책이 필요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젊은 사람들에게서 ‘아이를 갖고 기르는 것이 부담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인식의 변화가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성공적인 출산 정책을 폈다는 프랑스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가정교육이 필요하고 사회도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역할을 해야 한다.

-출산율을 높이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인구가 줄면 많은 문제가 생긴다. 생산할 수 있는 사람이 감소하면 경제 성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성장이라는 어젠다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늘어난 노인들이 성장보다 자신들의 복지를 더 원하기 때문이다. 출산율 제고에 힘쓰되 생산성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교육·연금·노동 개혁 등으로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올려 인구 감소를 보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세수를 유지·확대할 수 있고 또 다른 투자 유발로 성장을 계속할 수 있다.

-잠재성장률이 5년마다 1%씩 줄더니 이제 2%선 미만으로 추락할 것으로 우려된다.

△미중 패권 다툼과 더불어 경제·안보 시대로 접어들면서 다시 특정 산업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산업 정책이 바뀌고 있다. 우리나라는 1960·1970년대에 조선·철강 등 특정 산업에 재정·금융을 적극 지원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독점 기업의 횡포, 물가 상승 등의 폐해가 나타나 모든 산업에 기술·인력 개발 등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우리도 세계의 흐름에 맞춰 산업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새로운 산업 정책은 인구 감소 및 잠재성장률 하락을 극복하는 데 관건이 될 것이다.

-미국이 특정 전략산업을 적극 지원하면서 유럽연합(EU) 등 많은 나라가 뒤따르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을 내세우면서 특정 산업에 대한 지원을 막아온 미국이 되레 앞장서 반도체·배터리 등을 집중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물론 EU·일본도 덩달아 나서며 국가대항전식으로 산업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국이 특정 산업을 지원하지 않고 자유시장 경제에 맡긴다며 아무리 주장해도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반도체·배터리 등은 안보와 미래를 좌우하는 전략산업이다.

현오석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오승현 기자


-과거의 특정 산업 지원 정책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인가.

△특정 산업을 과감하게 지원하되 정경유착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투명하게 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미국 정부와 백신 기업이 한 것처럼 정부와 기업이 투명한 협조 관계를 맺어야 한다. 지원 결과 독과점이 생기면 거기에 대한 규제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부실기업 정리를 지원하는 산업은행의 역할도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칩4’ 같은 반도체 동맹에도 적극 참여해 우리의 미래 산업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게 해야 한다.



-가계·기업 부채가 각각 연간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넘어섰고 국가 채무도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는데.

△장기 저금리 상태에서 팬데믹이 불거지면서 재정이 방만하게 운용된 영향이 적지 않다. 방치하면 폭탄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고물가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아 고금리가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가계·기업의 복원력을 높이기 위해 옥석을 가리는 구조 조정을 해야 한다. 방만하게 운영돼온 공공 부문도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

-지방 공항 건설 등 인기에 영합하기 위한 포퓰리즘 정책이 꾸준히 나오는데.

△경제 전체가 포퓰리즘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목소리 큰 소수보다 말 없는 다수의 이익이 무엇인지 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근거에 입각해 정책을 펼쳐야지 정책을 미리 정해놓고 근거를 찾아서는 안 된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는데.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1982~2012년에 태어난 MZ세대가 벌써 1230만 명이다. 경제활동인구 2860만 명(올해 2월 기준)의 43%에 이른다. 기술이 발전했고 사회 시스템, 사고방식이 엄청나게 변했다. 또 앞으로 굉장히 큰 변화가 예상된다.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노동법, 복지 제도, 교육법 등을 새로운 환경에 맞게 바꿔야 한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는 서비스 산업 발전이 절실한데 서비스산업발전법은 12년째 국회에 묶여 있다.

△10년 전에는 플랫폼 사업이 이렇게 발달할지 몰랐다. 의료·택시·변호사 등의 온라인 서비스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정책을 펴나가되 부작용을 풀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맞다. 농업 개방 때처럼 개방하되 충격 완화 장치를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경제정책을 개발하는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세 가지 원칙을 강조하고 싶다. 첫째는 경제에 공짜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공짜 같아 보이지만 나중에 누군가 비용을 치러야 한다. 둘째는 정부가 절대로 시장을 못 이긴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빵값을 올리면 기요틴에 올리겠다고 하자 빵이 사라졌다. 민간의 역동성을 활용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셋째는 규제만으로는 안 되고 인센티브를 줘야 경제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무역수지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수출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는데.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세계 경제가 어려워 교역량이 급격히 줄었다. 둘째는 수출의 25%가량을 차지해온 중국 경제가 고전하고 있다. 셋째는 중국 제품의 경쟁력이 우리 제품을 따라잡아 중국이 스스로 생산해 소비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서 수입 금액이 늘었다.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고부가가치 기술을 개발하고 중국 제품을 이겨낼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시장도 중국에만 의존하지 말고 다변화해야 한다.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절약하기 위해 전기 요금 등을 현실화해야 한다.

-미중 패권 전쟁으로 세계가 블록화하고 있다.

△미중 갈등과 과거 미소 냉전을 비교하면 다른 점이 많다. 미소 간에는 교역이 얽혀 있지 않았는데 미중 간에는 미국 사람 60%가 중국 제품을 쓸 정도로 많이 연관돼 있다. 냉전 시기에는 공산주의 혁명 수출과 방어전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경제 전쟁이다. 소련은 망한 뒤 내부를 들여다보니 완전히 허상이었지만 중국은 나름대로 탄탄한 경제 기반을 갖고 있다. 그래서 미중 갈등은 꽤 오래갈 것 같다. 민주주의만 내세운다고 중국이 소련처럼 저절로 무너지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같이 주어진 여건에서 경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

△미국과 잘 조율해가면서 다변화하는 큰 숙제가 남아 있다. 과거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 안보 시대에 맞게 경제와 안보를 함께 보는 태도와 전략·정책이 필요하다. 정부 내에서도 경제와 외교안보 부처 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현오석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오승현 기자


◆He is···

1950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에 합격하며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해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국고국장 등을 거친 뒤 박근혜 정부에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다.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 세무대학장,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한국개발연구원장, 국립외교원 석좌교수 등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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