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진 여성 납치·살해 사건이 코인 투자 실패에 따른 원한 관계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주범으로 지목된 이 모(35) 씨가 피해자 A 씨의 가족이 운영하는 암호화폐 회사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봤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추가로 20대 공범 한 명이 입건됐고 조력자가 더 있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피의자 이 모 씨와 연 모(30) 씨, 황 모(35) 씨는 강도살인·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3일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2021년 A 씨와 A 씨의 남편이 운영하는 회사에 투자했다가 8000만 원을 손해봤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의 남편도 암호화폐 투자 관련 사기 혐의로 구속된 상태로 이 씨뿐 아니라 다른 투자자들로부터 원한을 샀을 개연성이 큰 상황이다. A 씨 남편은 비상장 코인에 투자하라며 이 씨를 포함한 투자자들로부터 이더리움 코인을 수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씨가 평소 암호화폐 손실을 주변에 여러 차례 토로하고 다닌 점, A 씨가 최근 지인에게 이 씨와 “갈등이 극에 달했다”고 말한 점, 금품 갈취 목적이라던 일당이 납치 후 6시간이 채 되기 전 피해자를 살해한 점도 원한에 의한 계획 살인 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납치와 살인을 담당한 황 모 씨와 연 모 씨는 시신을 유기한 대청댐을 사전 답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경찰은 “이 씨가 A 씨로부터 손해를 봤다는 것은 이 씨의 진술일 뿐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명확한 살해 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A 씨와 주범 이 씨의 관계와 금전 흐름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씨와 A 씨는 과거 암호화폐 투자에서 비롯한 형사사건에도 함께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021년 2월 또 다른 투자자 B 씨를 찾아가 암호화폐를 갈취하려 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다. 두 사람이 투자한 암호화폐가 폭락하자 또 다른 투자자 B 씨가 시세조종을 했다고 의심해 암호화폐를 빼앗으려 한 혐의다.
경찰은 추가 공범 여부와 청부살인 가능성까지 열어놓고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사전 미행 등에 가담해 살인 예비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을 입건하고 지난달 31일 이 씨와 같은 코인에 투자한 40대 여성을 출국금지해 소재를 파악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납치 주범인 이 씨의 윗선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한편 이번 사건의 경찰 초동 대응이 미흡했다는 논란도 일고 있다. 경찰은 사건 발생 후 5시간 지난 3월 30일 오전 4시 57분 전국에 공유되는 수배차량검색시스템(WASS)에 납치 차량을 등록했다. 차량 번호를 인지한 시점보다도 4시간여 뒤다. 결국 WASS에 등록되고나서야 오전 6시를 넘어 대전을 빠져나가는 차량을 포착했다. 또 다음날 오전 피해자가 암매장될 때까지 경찰 지휘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구체적인 보고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휘부 보고와 상황 전파가 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남익 수서경찰서장은 3월 30일 오전 7시 2분,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오전 6시 55분에 각각 상황을 보고받았다. 용의자들이 이미 A 씨의 시신을 야산에 암매장하고 대전을 벗어나던 시각이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