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군 기밀 문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유출된 사건과 관련해 미국이 동맹국들을 감청해온 사실이 함께 드러나 외교관계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며칠 동안 트위터와 텔레그램 등에 퍼진 문건을 보면 미국 정보당국은 공격 계획과 전쟁 여력 등을 상세히 평가하고 있는 등 러시아의 보안·정보기관에 깊이 침투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또 러시아군의 공격 시기와 특정 목표물까지 매일 실시간으로 미국 정보기관에 전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정보를 미국이 전달해준 덕에 우크라이나가 중요 전기마다 방어태세를 충분히 갖춘 것으로도 풀이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미군의 이같은 정보 획득은 러시아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출 문건에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최고 군사·정치 지도자들도 감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고 NYT는 보도했다.
이에 대해 NYT는 "유출 문건들은 미국이 러시아뿐 아니라 다른 동맹국에 대해서도 첩보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며 "이미 동맹국들과의 관계가 복잡해졌고 미국의 비밀 유지 능력에 대한 의구심마저 자아냈다"고 짚었다.
이어 "이런 도청 사실이 공개되는 것은 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을 위해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한국과 같은 주요 파트너 국가와의 관계를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 향후 외교 관계에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 정보기관의 보안이 뚫렸다는 점으로 인해 향후 주요 국가들과의 정보 공유 협조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한 서방 국가의 고위 관리는 문건들을 살펴본 후 "고통스러운 유출"이라며 향후 미국과의 정보 공유에 제한을 둘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그는 "여러 정보기관이 서로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비밀이 유지될 것이라는 신뢰와 확신이 필요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NYT에 따르면 유출된 문건은 총 100쪽에 달하며 미 국가안보국(NSA)·중앙정보국(CIA)·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등 정부 정보기관 보고서를 미 합동참모본부가 취합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문건은 사냥 잡지 등으로 보이는 것들 위에 올려져 촬영된 사진의 형태로 온라인에 확산됐는데 이를 분석한 전직 관리들은 유출자가 기밀 브리핑 자료를 접어 주머니에 넣은 다음 안전한 장소에서 꺼내 사진을 찍은 것으로 추측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이 문건은 게임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에 먼저 나타나기 시작했고 온라인 커뮤니티 '4chan' 등에 유포된 후 텔레그램과 트위터 등으로 퍼진 것으로 추정됐다.
다만 일부 사진에서는 미국 국방부의 공개 데이터와 달리 러시아군 사상자 수가 훨씬 높거나 낮게 나타나는 등 일부 조작된 정황도 보인다고 WP는 전했다.
다만 상당수 고위 관리는 문서가 완전히 위조된 것으로는 보이지 않으며 백악관, 국방부, 국무부 등에 제출되는 CIA '세계 정보 리뷰' 보고서와 형식이 유사하다고 말했다고 WP는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국무부는 전날 성명을 통해 문서 유출 경위에 대한 공식 수사에 착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이미 자체 조사에 돌입했다.
우크라이나는 일단 문서의 가치를 평가절하면서도 전쟁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우크라이나군의 계획과 관련한 정보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올렉시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보좌관은 전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면담한 후 WP 인터뷰에서 "우리의 행동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될지는 오직 우리 나라만이 알고 있는 것"이라며 "이를 아는 사람은 최대 5명이다. (유출 문건 내용의) 다른 것들은 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 고문도 "유출 문서 대부분이 허위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실제 계획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실제 반격 계획은 러시아군이 가장 먼저 알게 될 것"이라며 실제 군사작전이 전장에서 실행에 옮겨지기까지 보안이 지켜질 것이라는 점을 못 박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