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위해 전 세계 개발도상국에 인프라 투자용으로 지원한 자금이 급속히 부실채권화하며 부담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악화된 글로벌 경기, 인플레이션의 여파로 급속하게 올라간 금리 등이 개도국 경제에 영향을 미치면서 회수가 불가능한 악성 대출이 급증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몽’ 실현을 목표로 주창해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일대일로에 그림자가 점점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미국 컨설팅 업체 로디움그룹의 집계를 보면 중국이 전 세계 인프라 투자를 위해 지원한 대출 중 2020년부터 올 3월까지 3년간 상각 혹은 재조정된 채무는 785억 달러(약 103조 원)다. 2017~2019년 3년간 상각·재조정된 채무가 170억 달러인 것과 비교하면 4배 이상 급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6일(현지 시간) 이같이 보도하며 “1조 달러 규모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 인프라 금융 프로그램이 악성 대출 급증으로 타격을 입고 있다”고 전했다.
이제까지 중국의 일대일로 투자 자금은 공개된 적이 없지만 미국의 윌리엄앤드메리대 산하 에이드데이터연구소는 약 1조 달러로 추산했다. 중국은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신흥국 중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국가에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하며 경제·외교적 영향력을 높여왔다. 개도국들로서도 눈앞에 나타난 발전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에 서로 이해관계가 맞았다.
문제는 중국이 투자했던 국가의 상당수가 팬데믹의 여파로 경제 여건이 급속도로 나빠졌고 부채를 제때 갚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국가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했던 아시아의 스리랑카, 아프리카의 잠비아가 대표적이다. FT는 “수많은 일대일로 프로젝트 참여 국가들이 글로벌 성장 둔화, 글로벌 금리 인상, 높은 부채비율 등을 이유로 파산 위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도 채무국들의 디폴트로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타격을 받는 것을 막기 위해 전례 없는 구제금융을 제공하고 있다. 에이드데이터와 세계은행(WB) 등이 최근 공동 진행한 연구를 보면 중국은 2000~2021년 22개국에 총 24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집행했다. 이 중 1040억 달러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실시했으며 2021년 한 해에만 405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2021년에 비하면 지난해 채무 재조정 및 상각 추세가 둔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구제금융이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고 말한다. 매슈 밍기 로디움 선임분석가는 구제금융에 대해 “근본적 해결과 거리가 멀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5%의 높은 금리를 매겨 ‘부채 함정’ 외교를 추구한다는 비판까지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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