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스웨덴 등 유럽 주요국들은 수십 년 전부터 가족 구성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인정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법적으로 혼인하지 않은 이성 또는 동성 파트너의 법적 권리를 혼인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보장하는 ‘시민결합’ 제도다.
이 국가들도 과거에는 지금의 한국과 비슷한 인구 문제를 겪었다. 결혼은 줄고 이혼과 별거가 증가하며 출산율은 떨어졌고 동거는 늘어났다. 시민결합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스웨덴은 1969년 가족법을 제정해 혼인하지 않고도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개정 법률은 “혼인 외에도 이혼을 포함하여 서로 다른 형태로 사는 것에 대한 도덕적 견해와 관련해 중립적이어야 하고 혼인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어려움이나 불편을 초래하는 조항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가족 구성원들의 이익과 복지를 보호하는 제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그 결과 스웨덴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합계출산율은 2020년 기준 1.66명으로 우리나라(0.84명)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프랑스도 1999년 결혼이 아닌 생활 동반자 관계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팍스(PACS·Pacte civil de solidarite)’를 도입했다. 프랑스는 이를 통해 동거 관계의 법적 효력을 인정하고 결혼과 이혼에 드는 비용을 줄이는 등 절차를 간소화했다. 그 결과 법 발효 후 프랑스의 비혼 출산 비율은 1998년 41.7%에서 2012년 56.7%로, 2020년에는 62.2%로 뛰었다. 합계출산율도 1999년 1.79명에서 2010년 2.01명으로 높아졌으며 2020년에도 1.83명으로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현재 팍스 제도를 통해 결합한 관계의 90% 이상이 이성 간 결합으로 이뤄져 있기도 하다.
영국의 시민동반자법(Civil Partnership)은 동성 동반자에게 상속권, 사회보장, 연금 혜택 등 결혼에 준하는 권리를 부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됐으나 이성 커플도 대상에 포함됐다. 캐나다 앨버타주는 2002년 제정된 ‘성인 상호의존관계법’을 통해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서로 감정적으로 헌신적이며, 경제 및 가족 단위로 가능한 혼인 이외의 관계’를 상호의존관계로 정의해 법적 보호와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이 계속해 언급되고 있다. 혼외 출산 등 다양한 관계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동의 권리도 충분히 보호하고 미혼모, 해외 입양 등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해소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다. 2021년 여성가족부의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사실혼·비혼 동거 등 법률혼 이외의 혼인에 대한 차별을 폐지해야 한다’는 질문에 대해 ‘필요하다’고 답한 비율은 △2019년 66% △2020년 70.5% △2021년 70.3%로 나타났다. 현재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2년 기준 0.78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며 혼외 출산율도 2.9%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나영정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은 “프랑스의 팍스도 이미 동거 커플이 많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도입됐으며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관계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며 “사회적인 현상을 규정하는 게 아니라 사회 현상에 맞춰서 정책을 수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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