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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후 출시까지 3년…첫해 국내 점유율 44%…1982년 해외수출 60개국

['포니 쿠페' 반세기만에 부활]숫자로 본 현대차 '포니'

1973년 3월 독자생산 결정…1975년 12월 양산 시작

자동차 부품 90% 이상 자체 제작…포니2는 98% 달성

정의선 "선대회장의 도전·혁신, 독자적 한국차 실현"

현대차의 첫 독자 개발 모델 포니. 사진 제공=현대차




18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포니 쿠페 콘셉트가 반세기를 거슬러 완벽한 모습으로 환생하면서 형제 모델인 포니의 역사도 재소환되고 있다. 포니 쿠페 콘셉트에 선진국 진출을 위해 스포츠카라는 분야에 도전한 현대차(005380)의 담대함과 혁신 정신이 담겨 있다면 포니는 국내 승용차 시장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76년 국내 첫 생산 이후 1985년 단종되기까지 국내 자동차를 대한민국 주력 수출 품목으로 성장시키고 국내 자동차 산업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포니의 역사를 숫자로 되짚어봤다.

①3년···개발을 결심한 뒤 포니 출시까지

1975년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포니 1호차가 생산되고 있다. 사진 제공=아산정주영닷컴


현대자동차는 1973년 3월 독자적인 자동차 생산을 경영 방침으로 결정했다. 합작 상대였던 미국의 포드가 자본금 납입을 미루고 주요 부품 국산화 약속도 지키지 않은 게 결정적이었다. 제조업 기반이 없는 개발도상국 한국에서 자동차 개발 경험이 전무한 현대차가 고유 모델을 개발한다는 계획에 회의적인 시각이 팽배했다. 많은 자동차 전문가가 당시 “현대차가 고유 모델을 개발하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지져라”라며 비웃었다는 이야기는 이 계획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일화다.

현대차는 우여곡절 끝에 포니 개발에 성공했고 울산에 완성차 공장을 준공하며 1975년 12월부터 양산을 시작했다. 이듬해 1월 26일부터 계약을 받기 시작한 포니는 2월 29일부터 고객에게 출고됐다. 불과 3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정주영 선대 회장은 1970년대 열악한 산업 환경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심지어 항공기까지 무엇이든 생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독자적인 한국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실현했다”며 선대 회장의 업적을 기렸다.

60개국···포니를 수출한 국가 수

현대자동차 최초의 수출 자동차인 포니가 1976년 6월 에콰도르 과야킬의 항구에 하선되고 있다. 사진 제공=현대차


포니는 해외 수출을 목표로 개발된 차였다. 국내 첫 출고 시점보다 보름 정도 이른 1976년 2월 중순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한 현대건설에 포니 15대를 시험 수출했다. 같은 해 7월 에콰도르에 포니 5대를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중동·중남미·아프리카 등지에 1019대의 포니와 포니 픽업이 수출됐다. 1977년에는 7427대를 30개국에 수출했고 1978년에는 1만 8317대를 40개국에 수출했다. 수출 지역도 중남미·중동·아프리카·아시아·유럽 등으로 확대됐다. 현대차의 수출 성과에 고무된 정부는 1979년 자동차 산업을 10대 수출 전략산업으로 선정한다. 이후 1982년 7월 포니는 단일 차종으로는 국내 최초로 누적 생산 30만 대를 돌파했다. 당시 수출 대상국은 약 60개국에 달했다.

포니를 통해 해외 수출 시장의 길을 닦은 현대차는 1985년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 진출하고 그해 세계 각지에 포니, 스텔라, 포니 엑셀, 프레스토 등의 다양한 모델을 수출해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나게 된다.



44%···출시 첫해 국내시장 포니 점유율

현대자동차 포니2. 사진 제공=현대차


포니는 국내에서 개발돼 한국인의 체격과 도로 사정에 적합했고 조립 생산차보다 내구성이 좋으면서도 경제적인 것이 강점이었다. 포니는 국내에 출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포니가 출시된 1976년 당시 국내 승용차 판매 대수는 총 2만 4618대였는데 포니 단일 모델이 그해 1만 726대 판매되면서 44%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포니2가 출시된 1982년에는 국내 승용차 판매 점유율의 67%(포니1·2 합산 기준)를 차지하기도 했다. 고도성장기인 1980년대에 포니는 국내 승용차 시장의 성장을 주도했 ‘마이카’ 시대를 여는 핵심 주역이 됐다.

90%···자동차 부품 국산화 비율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85년 현대차 포니 엑셀 신차 발표회에서 포니 엑셀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제공=아산정주영닷컴


포니의 주요 인기 요인 중 하나는 높은 부품 국산화율이다. 당시 조립 방식으로 생산된 차는 자주 고장 났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부품이 수입품이라 수리비가 비싸고 작업도 오래 걸렸다. 반면 포니는 부품 대부분을 국내에서 생산한 덕분에 수리가 빠르고 비용도 저렴했다. 또한 최신 시설에서 생산한 국산 부품을 통해 품질 수준을 끌어올리며 낮은 내구성으로 비판받던 현대차의 품질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포니 부품 국산화의 진정한 의의는 국내 부품 업체 발굴과 계열화를 통해 국내 자동차 공업 발전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데 있다. 포니는 당시 국내 기술 수준으로는 제작이 어렵거나 시장성이 낮은 일부 품목만 수입에 의존했고 90% 이상의 부품을 자체 제작하거나 국내 부품 업체를 통해 생산했다. 이후 포니2는 최대 98%의 국산화율을 달성했다. 이와 같은 부품 국산화 노력은 국내 자동차의 전후방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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