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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은 우리 모두의 문제"…열여덟 어른의 이야기

자립준비청년 당사자 인터뷰

당사자 목소리 내려 캠페인 시작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갈길 멀어”

“누구나 타인의 도움 받고 살아”


“저희는 좀 더 빨리 자립하는 것 뿐 아닐까요?”

2102명. 2021년 기준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가정위탁 등의 보호를 받다가 보호가 종료돼 해당 시설에서 퇴소하게 된 전국의 자립 준비 청년(보호종료아동)의 숫자다. 전국적으로 해마다 2000여 명이 넘는 아동이 사회로 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에선 자립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보호가 끝나 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신선(29), 손자영(26) 씨도 한때 그랬다. ‘열여덟 어른’의 캠페이너로서 자립 준비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이들을 지난 5월 15일 서울 종로구 아름다운재단에서 만났다.

서울 종로구 아름다운재단에서 신선(29), 손자영(26) 씨가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유민 기자




편견에 맞서고, 살아가는 법을 공유해요


보육원에서 빨리 나오고 싶어 남들보다 일찍 고등학교 때 취업을 했다는 손 씨. 삶을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불안감만큼 그를 괴롭혔던 건 편견이었다. “일 잘한다고 좋아하던 아르바이트 사장님이 보육원 출신이라는 것을 알더니 하루 아침에 태도가 돌변했을 때 너무나 억울했어요.” 손 씨는 어린 시절부터 마주한 편견이 스스로를 예민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미디어 속 고아 캐릭터에는 공식이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는 고아를 범죄자나 야망에 가득찬 인물, 동정의 대상이나 비현실적으로 낙천적인 인물로만 그려냈다. 손씨는 고아가 ‘보통의 청년’임을 알리기 위해 유튜브 <열여덟 어른> 채널과 팟캐스트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카페에서 고아라고 차별받는 장면을 본다면?’ 등의 실험 카메라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10만 회 달하는 등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손 씨가 제작에 참여한 영상 컨텐츠. 유튜브 화면 캡처


신선씨 역시 당사자로서 자립 준비 청년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전하고 있다. 처음 보육원을 퇴소하고 난 뒤 혼자 동사무소를 가는 일조차도 무척 망설여졌지만 어디에 물어야 할지 막막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이 발표한 ‘2021 아동자립지원 통계현황보고서’의 자립 준비 청년 상담분야 현황을 보면 ‘생활’에 관한 상담이 29.2%로 가장 많았다.

이사하는 법을 소개하는 ‘열여덟 어른 TV’의 한 장면. 유튜브 화면 캡처


주변을 돌아보니 자신처럼 일상적인 어려움을 겪는 후배들이 많았다. 자신과 같은 자립 준비 청년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글로 썼다. 유튜브 영상으론 이사하는 법, 돈 관리하는 법 등 자립 준비 청년들이 일상 생활에서 꼭 필요하지만 선뜻 묻기는 어려운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다. 신 씨는 “많은 자립 준비 청년들이 좀 더 쉽게 자기 얘기를 꺼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오랫동안 캠페인 활동 하고 있다”며 소감을 밝혔다.

돈보단 공고한 시스템이




이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긍정적인 변화들이 생겼다. 2019년도에는 500만 원(서울시 기준)도 되지 않던 자립 정착금이 현재는 1500만 원이 됐다. 만 18세였던 시설 퇴소 나이 기준도 만 24세로 확대됐다.

하지만 더 많은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장기적 관점의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 씨는 “시설에서는 용돈을 선생님이 관리하는데 자립한다고 갑자기 1500만 원을 주면 어떻게 관리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하다”며 “실질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방법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시설에서 자립 이전 지원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필요한 것을 선택하는 구조가 아니라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충분치 못한 사전 교육과 사후 관리로 인해 통계상 자립 준비 청년 5명 중 1명 꼴로 보호 종료 이후 자취를 감추고 있다. ‘2021 아동자립지원 통계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동복지시설 자립수준평가 대상자 11397명 중 2299명이 연락두절로 파악됐다.

아동양육시설에 비해 공동생활가정, 가정위탁 출신 자립 준비 청년들이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정위탁, 그룹홈 출신 자립 준비 청년들 중에는 스스로가 지원 대상자임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심리·정서적 지원도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광주에서 2명의 자립 준비 청년이 생활고를 겪다 잇달아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들의 유서에는 ‘삶이 너무 가혹하다’ 등 내용이 적혀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자립은 우리 모두의 문제”


먼저 사회에 나온 이들은 앞으로 자립을 마주하게 될 이들에게 응원의 목소리를 전했다. 손 씨는 “자립하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는 안될 거 같다는 느낌인데 그러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 씨도 “무인도에서 살지 않는 이상 누구나 타인의 도움을 받으면서 산다”며 “먼저 도움을 청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말고 요청할 것”을 당부했다.

이들은 자립 준비 청년의 문제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도 말한다. 손 씨는 “자립이라는 것이 자립 준비 청년에만 국한된 게 아닌 이유는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라며 “모두의 자립이라는 관점에서 청년의 자립으로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 씨도 “출산율이 낮은 상황에서 보호 아동들을 잘 양육해서 사회 구성원으로 키워내는 투자의 관점에서도 바라봐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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