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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사고 후 자리 바꿔 발뺌 …CCTV 속 전자담배에 덜미 잡혀

[수사는 과학이다]

<끝> 멀티미디어 복원

'운전 안했다' 번복에 수사 난항 속

흐릿했던 CCTV 화면 화질 개선

운전석 흡연 장면 포착 범죄 입증

동석자에겐 '범인도피' 자백 받아

지난 달 30일 경기도 수원시 광교산 입구에서 경찰이 행락지 및 스쿨존 음주단속을 하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지난해 9월께 경기도의 한 도로. 신호를 위반하고 달리던 자동차가 버스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가해 차량 운전자인 A씨의 사고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178%로 만취상태였다. 피해자인 버스 운전기사는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었다. 게다가 A씨는 이미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은 전력도 있어 가중처벌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술을 마시고도 운전대를 잡았다가 낸 전형적인 음주운전 사고였으나 A씨가 돌연 ‘본인이 운전하지 않았다’고 진술을 번복하면서 수사는 난항에 봉착했다. 함께 자동차에 타고 있던 B씨가 ‘운전은 본인이 했다’는 취지로 진술하면서 사건은 진짜 운전자를 둘러싼 진실 게임 양상으로 번졌다.

경찰은 A씨가 운전했다고 판단하고, 기소 의견으로 수원지검 평택지청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사고 차량에서 ‘검은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는 피해자 진술이 있기는 했으나 폐쇄회로(CC)TV상 확인이 쉽지 않았다. 사고 당시가 야간인데다, 화질도 흐릿해 실제 두 사람이 차량 안에서 자리를 바꾸었는지 등이 불명확한 탓이었다. 특히 두 사람은 사고 당시 운전자가 A씨가 아닌 B씨라고 입을 모았다.

이재희 부산지검 검사(당시 평택지청 검사)는 “A·B씨는 체구도 비슷한데다, 둘 다 안경을 쓰고 있어 기존 CCTV 화면만으로는 운전자가 교체됐는지 여부를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웠다”며 “증거가 충분치 못해 기소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꼬인 사건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검찰이 선택한 건 확실한 물증 확보였다. 검찰은 사고 당시 CCTV 영상 캡쳐 사진에 대한 화질 개선을 대검찰청 법과학분석과 소속 멀티미디어분석실 영상분석팀(대검 분석팀)에 의뢰했다. 이곳은 대검 예규인 ‘멀티미디어 복원 규정’상 손상된 영상·음성 데이터를 보거나 들을 수 있도록 복원하는 부서다. 대상은 저장매체에서 삭제된 후 덮어쓰기 등으로 재생 정보가 손상되거나, 재생 기간 만료, 재생 비밀번호 분실 등 이유로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디지털 영상·음성데이터(CCTV, 블랙박스 동영상 파일 등)다. 또 디지털 영상·음성 데이터가 기록된 뒤 삭제돼 복원이 필요한 하드디스크, 메모리카드, USB 메모리 등 저장매체도 포함된다.

특단의 조치는 곧 핵심 증거의 확보로 이어졌다. 대검 분석팀은 기존 화질이 좋지 않은 영상 데이터를 고화질(USD 등)로 변화시켜주는 ‘업스케일링’ 등 기술로 CCTV 캡쳐 사진의 화질을 개선시켰다. 결국 운전자가 전자담배로 보이는 막대기를 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평소 담배를 피지 않는다’라는 B씨 진술과 맞물리면서 실제 운전자가 흡연자인 A씨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본인이 운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던 A씨는 결정적 증거 앞에 끝내 스스로 혐의를 인정해 구속됐다. 특히 검찰은 ‘과거 업무 과정에서 A씨의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 대신 운전했다고 진술했다’는 B씨 자백까지 이끌어내 두 사람에게 각각 범인도피교사·범인도피 혐의도 적용했다. 잘못된 동료애로 인한 거짓 진술이 A·B씨에게는 죄의 무게만 키우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이 검사는 “CCTV 캡쳐 사진에 대한 화질 개선으로 사고 당시 운전자가 전자담배를 물고 있었다는 증거를 확보하게 됐다”며 “과학 수사로 물적 증거를 확보하면서 기존 음주운전·위험운전치상에 이어 범인도피교사·범인도피 혐의까지 새로 입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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