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 시기의 재상 황희에게 시비가 붙어 다투던 두 하인 중 한 명이 와서 하소연했다. 황회는 그에게 “네가 옳구나”라고 답했다. 다른 하인이 와서 얘기하자 황희는 또 “네가 옳다”라고 했다. 옆에 있던 부인이 “다툼이 있었는데 양쪽이 다 옳다고 하면 어쩝니까”라고 묻자 황희는 “당신 말도 옳습니다”라고 했다.
황희의 이 일화는 다름을 인정하는 지혜로움과 너그러움을 나타내는 고사로 흔히 인용된다. 하지만 황희가 평소 성격이 대쪽같아 융통성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진 것을 고려하면 이 일화의 신빙성에 의문이 생긴다.
황희의 고사는 너그러움이나 다름을 인정하는 융통성 측면보다 이해 관계자가 얽혀 있는 사안을 판단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이해하는 게 맞다. 그래야 대쪽같고 보수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황희의 모습과도 모순되지 않고 어울린다. 동시에 대립·갈등·비타협·직진 등으로 대표되는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잠깐 멈춰서서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지혜를 전해준다.
황희의 고사를 되짚어 본 건 최근 정치권의 움직임이 안타까워서다. 모든 걸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심하다. 국회에서 정당들 사이의 대화와 타협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됐다. 다수당은 자신들만의 힘으로 법안을 통과시키고, 집권당은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해 거부권을 행사한다. 그 가운데 그 법안에 찬성했던 사람들이나 반대했던 사람들 사이의 이견은 감정과 호불호의 문제로 치환된다. 한편에서는 집권했을 때, 다수당일 때 일거에 해결해야 한다는 조급증이 깊어진다.
노동문제에 국한해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강행 통과와 거부권 행사가 거론되고 있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보자. 이 개정안에서 사용자의 개념 확대 문제와 쟁의행위 시의 손해배상 청구권 제한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오래된 문제들이기는 하지만 오래된 만큼 논의가 제대로 된 것은 아니었다. 주장만 끊임없이 되풀이됐을 뿐 조정과 타협을 위한 진전은 없었다. 이러한 문제를 단지 조문 몇 줄 바꿔서 해결해보겠다는 입법 시도는 너무 섣부르고 무모하다.
2009년 법무부 주도로 출범했던 민법개정위원회는 전문가들로만 구성됐다. 위원회는 공동불법행위 책임 제한과 관련해 장기간 논의한 끝에 분담 부분 없는 ‘부진정연대책임’을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부진정연대책임이란 여러 명의 채무자가 같은 내용의 채무에 대해 각자 독립해 채권자에게 전부 이행할 의무를 부담하는 다수당사자의 법률관계를 말한다.
하지만 국회에서 논의 중인 노란봉투법 개정안을 보면 이런 오래된 논의를 한 번에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공동불법행위 시 책임 개별화 문제를 조항 하나 넣는 것으로 한번에 끝내려 하고 있다. 이런 섣부름과 경솔함이 용기나 결단으로 읽혀서는 안 된다. 일단 내 관점에서 옳으니까 또는 내 편이 옳다고 하니까, 할 수 있을 때 해본다는 생각은 입법기관이 절대 가져서는 안 되는 오만이다. 660년 전 황희의 흔한 일화를 오늘날 다시 꺼내보며 황희의 속내를 곱씹어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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