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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하루] 히틀러에 뒤통수 맞은 스탈린

최호근 고려대 사학과 교수

1941년 6월 22일





아돌프 히틀러는 탁월한 거짓말쟁이였다. 개인은 물론 국가 간의 신뢰도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기만의 귀재였다. 상대방이 듣기 원하는 말을 할 줄 아는 재능이 그에게 많았다. 유명한 1938년 9월 30일의 뮌헨 협정이 그랬다. 체코 영토인 수데테란트만 독일에 넘겨주면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히틀러의 말에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수상과 프랑스의 에두아르 달라디에 총리가 완전히 속았다.

히틀러는 전쟁을 겁내는 두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어디 히틀러에게 속은 사람이 이 둘뿐일까. 정치와 외교에서 모사꾼의 끝판왕으로 불리기에 충분한 스탈린도 히틀러에게 완전히 속았다. 1939년 8월 23일 서방국가들 몰래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한 스탈린은 곧 시작될 2차대전이 자본주의와 파시즘의 싸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어부지리를 꿈꿨다. 하지만 완전한 오판이었다. 채 2년도 지나지 않아 나치 독일이 소련을 전면 침공했으니 말이다.



독일은 200만 명이 넘는 군대를 동원해 소련군을 파죽지세로 무너뜨렸다. 독일군 후방에서는 살인특무부대로 불리는 친위대 예하의 특수부대가 비무장 유대인들을 조직적으로 살해했다.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 된 것이 1941년 6월 22일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이었다. 히틀러는 국운을 건 이 엄청난 군사작전에 ‘바르바로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탈리아어로 붉은색(rossa) 수염(barba)이라는 뜻이다.

왜 하필 붉은 수염이었을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바로 이 별명의 주인공이다. 수영 중 익사한 이 비운의 황제는 독일이 통일되는 날 깊은 잠에서 깨어날 것이라는 예언으로 독일인들 사이에서 하나의 전설이 됐다. 역사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히틀러는 이 과거의 인물을 다시 불러냈다. 그 자신이 민족의 전설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41년 6월 22일에 시작된 히틀러의 미몽이 깨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942년 여름 스탈린그라드전투가 시작되고 이듬해에 독일군이 패퇴하면서 민족 신화의 새로운 주인공이 되려는 히틀러의 야망은 결국 일장춘몽으로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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