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암호화폐를 발행·보유하는 기업은 그 현황을 재무제표 주석을 통해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암호화폐를 빌미로 실적을 부풀리거나 실제 자산을 감추는 등의 편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11일 금융위원회는 회계기준위원회가 7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기업회계기준서 개정 공개 초안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금융 당국은 앞으로 약 2개월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올 하반기에 최종 개정안을 발표하고 이를 내년 1월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금융 당국은 먼저 그동안 명확한 지침이 없어 불투명하게 운영되던 암호화폐 거래와 보유 정보를 앞으로는 재무제표 주석상에 상세하게 공시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암호화폐 발행사는 자사가 개발·발행한 암호화폐의 수량과 특성, 이를 활용한 사업 모형과 사업 이행 경과 등의 내용을 소상히 기재해야 한다. 또 암호화폐를 발행한 뒤 유통하지 않고 내부에 둔 물량에 대해서도 보유 정보와 사용 내역을 세세하게 공시해야 한다. 당국이 카카오(035720)와 위메이드(112040)·넷마블(251270)·네오위즈홀딩스(042420)·다날(064260) 등 주요 암호화폐 발행사 5곳의 감사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들이 암호화폐 발행 이후 유통하지 않은 내부 유보 물량은 지난해 말 기준 전체 발행량의 81.7%에 달하는 254억 개였다.
당국은 나아가 고객이 위탁한 암호화폐의 물량·시장가치을 종류별로 공시하도록 했다. 투자 목적 등으로 암호화폐를 단순 보유한 상장사 역시 재무제표에 적은 장부 금액과 시장가치 정보를 빠짐없이 기재해야 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상장회사가 보유한 제3자 발행 자산자산 시장가치 규모는 2010억 원이었다. 이 가운데 카카오가 발행한 클레이(KLAY)의 금액이 556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당국은 암호화폐를 통해 실적을 부풀리거나 감추는 행위를 막기 위해 수익·비용 처리 시점에 대해서도 명확한 지침을 제시했다. 지침에 따르면 발행사는 암호화폐 보유자에 대한 의무를 모두 완료한 뒤 매각 대가를 수익으로 인식해야 한다. 반대로 암호화폐가 특정 플랫폼에서 화폐처럼 쓰이기 전까지는 매각 대가를 수익이 아닌 부채로 잡아야 한다. 앞서 위메이드는 2021년 위믹스로 얻은 수익 2234억 원을 모두 매출로 잡았다가 이를 문제 삼은 외부감사인의 지적에 영업이익이 3분의 1 토막 난 바 있다.
당국은 이와 함께 암호화폐와 플랫폼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명확한 근거 없이 지출한 돈도 곧장 비용으로 회계 처리하도록 했다. 만약 요건을 충족해 무형자산으로 인식했다면 매 회계연도마다 가치 손상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 암호화폐 발행자가 자체적으로 유보한 소위 ‘리버스 코인’에 대해서는 재무제표상 자산으로 보지 않기로 했다. 이번 방안으로 업비트나 빗썸 등 관련 사업자는 고객이 위탁한 암호화폐를 자산이나 부채로 인식할 때 법적 재산권 보호 수준 등 경제적 통제권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암호화폐 매각에 따른 수익을 언제 인식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이 없어 그 기준이 회사마다 달랐다”며 “이번 조치로 암호화폐의 회계 투명성을 제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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