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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지금이야말로 '그리스 징비록' 써야 할 때

서정명 국제부장

그리스, 여야 선심성 정책에 골병

감세 ·재정개혁 통해 정상국가 변신

韓, 세수 펑크에 국가채무 '눈덩이'

내년 총선 앞두고 포퓰리즘 불보듯

그리스에서 역사의 교훈 얻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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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추를 정확하게 12년 전으로 돌려본다. 2011년 8월 재정 적자와 과다한 국가부채로 가쁜 숨을 몰아쉬던 그리스를 취재한 적이 있다.

일자리 상실과 생활고에 시달린 시민들은 아테네 국회의사당 앞 산티그마 광장(헌법 광장)에 모여 국제통화기금(IMF)과 체결한 긴축 방안을 거부하며 연일 집회와 시위를 벌였다. ‘지속 불가능한(unsustainable)’ 만성적인 포퓰리즘 정책이 만들어낸 후과였다.

그리스는 1980년대부터 집권당과 야당이 정권을 교대로 장악하는 과정에서 공공 일자리를 대거 늘리고 국립병원 보건의료비와 대학 등록금을 모두 무상으로 제공했다. 연소득이 1만 2000유로에 미달하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됐다.

‘선거 표만 얻고 보자’는 얄팍한 포퓰리즘 상술 경쟁에 나라 곳간은 텅텅 비고 국가 경제는 골병을 앓았다. 그리스의 자존심인 파르테논 신전으로 올라가는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는 걸인들이 관광객에게 구걸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형벌을 받아 영원히 무거운 바위를 언덕 위로 굴려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처럼 ‘그리스의 비극’은 처참했다.

올 6월 총선에서 그리스 국민들은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가 이끄는 집권 여당인 신민주주의당에 또다시 승리를 안겨줬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2019년 처음 집권한 뒤 기업 감세, 외국인 투자 유치, 무상 의료 개혁, 공기업 민영화 등 시장 친화 정책을 펼쳤다. ‘유럽의 문제아’ 취급을 받았던 그리스 경제는 2021년 8.4%, 지난해 5.9%의 성장률을 달성하며 2년 연속 유럽연합(EU) 평균을 뛰어넘었다. 2020년 206%에 달했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비율도 지난해 170%까지 내려갔다. 13년 전 재정난으로 그리스 신용도는 투기 등급인 CCC에 머물렀지만 부채 축소와 재정 개혁을 통해 등급이 상향 조정됐고 올해는 투자 적격인 BBB-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의회에서 정부 부채의 추가 감축과 구제금융에 대한 조기 상환 방침을 밝혔다. 미초타키스 총리의 목표는 정부 부채비율을 2027년 말까지 140% 밑으로 낮추고 수출 확대를 통해 유럽 국가들로부터 빌린 53억 유로의 차관을 조기 상환하는 것이다.

그리스 국민은 연금 수령 증액,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달콤한 포퓰리즘 공약을 습관적으로 들고 나온 제1야당인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을 철저히 외면했다. 눈을 가리고 귀를 간질이는 포퓰리즘 공약이 악성 종양이 되고 결국에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역사의 진실을 처절하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다시 ‘동굴의 우상’에 빠지는 과오를 범하지 않았다.



한국은 내년 4월 총선을 치른다. 야당은 벌써 35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주장하며 ‘재정 곶감’을 빼먹을 생각을 하고 있고 재정자립도가 바닥 수준까지 떨어진 지방자치단체들도 선심성 추경 타령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돈 풀기 향연’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게 뻔하다. 올해 상반기 국세 수입은 178조 50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조 원(18.2%)가량 증발했다. 수출 여건 악화로 법인세가 줄고 부동산 거래 감소로 양도소득세가 축소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지난해 국가채무(중앙정부 기준)는 총 1033조 4000억 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1000조 원을 넘어섰으며 국가채무비율도 48.1%에 달했다. 경제 상황과 세수 여건을 감안하지 않고 ‘일단 쓰고 보자’는 그릇된 정책이 만들어낸 결과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부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재정 적자에 상한을 두는 엄격한 재정준칙이 필요한데 여야는 팔짱만 끼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가채무비율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여유가 있으니 재정의 역할이 필요할 때는 지출을 늘려도 된다는 주장이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재정준칙 등 통제 장치가 없으면 국가채무비율이 2060년 145~161%로 급격하게 올라간다. 지금 세대가 잠시 편하자고 미래 세대의 꿈을 약탈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국회는 지금이라도 ‘그리스 징비록’을 써야 한다. 실패에서 역사적 교훈을 얻은 그리스와 달리 우리는 되레 달콤한 포퓰리즘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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