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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적자생존'의 교실

박성규 사회부 차장





학부모 민원 다 들어주고, 문제 학생까지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교사. 얼핏 교육계 적자(適者)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을 접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초등학교 교사인 동생이 학부모 악성 민원 때문에 극단선택을 고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부모 민원 등의 문제로 힘겨워하던 신규 교사가 숨진 지 며칠이 지난 후였다. 악성 민원 때문에 하나 뿐인 생명을 내려 놓으려고 하는 교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우리 교육계 현실이다. 학부모 악성 민원에 시달려 극단선택을 고민하고, 학생이 잘못된 행동을 해 바로 잡아주려다 아동학대로 신고 당해 직위해제 처분을 받기 일쑤다. 교육계에 이 같은 적자가 존재할 수도 존재해서도 안되는 이유다. 물론 일반화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교권 침해는 더 이상 일부 학교에서 발생하는 특이한 일이 아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지난달 25~26일 만 하루 동안 진행한 교권침해 설문조사에 무려 1만1627건의 사례가 접수됐다. 기자가 평소 알고 지내는 다수의 교사들에게 교권 침해를 경험한 적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이들 역시 “그렇다”고 답했다. 침해 사례는 저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교권 침해에서 자유로운 교사들을 찾을 순 없었다. 마땅한 해법이 없는 상황에서 교사들의 선택은 결국 ‘기록’하는 것이다. 혹시 나중에 무슨 일이 있을 지 모르니 최소한의 자기 방어 수단인 셈이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교사들이 아동학대로 신고 당하고 학생지도가 정당했는지 따져야 하는 일들이 많다 보니 오래전부터 증거를 남기기 위해 적는 일이 많다”며 “교사들 사이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적어야 산다’는 뜻의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라고 전했다.



교권 추락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붕괴에 직면한 교권을 보호하고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이 절실할 상황이다.

늦었지만 당국이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다. 교육부는 최근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를 위한 국회공청회에서 ‘교권 회복 및 보호 종합방안 시안’을 공개했다. 교육 당국은 시안에 들어가 있는 대책 중 그간 일선 현장에서 줄기차게 요구해 온 학교생활지도 고시안도 발표했다.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 금지, 수업방해 학생 퇴실 조치 등이 핵심이다. 나머지 방안 등은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이달 말 발표될 예정이다.

그러나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도록 면책법을 부여하는 방안, 중대한 교권 침해 사안은 학생부 기재하는 방안 등은 입법 과제여서 시행 여부를 장담하기 어렵다. 국회와 정부·교육감들이 교권 보호 입법화를 지원하기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지만, 학생부 기재와 관련해서는 소송 남발 우려 등으로 반대도 만만찮다. 일부 방안에 대해 교권 침해 피해자인 교사들 사이에서도 지나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부모가 유치원 교사를 상대로 갑질을 하면 아이를 퇴학시키도록 한 내용이 대표적이다.

교권과 학생인권은 저울에 올라간 추와 같다. 어느 한쪽만 강조하다 보면 반대쪽은 기울어지기 마련이다. 교권 대책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대책만으로 붕괴된 교실을 다시 일으킬 순 없다. 교권 추락 원인과 관련해 체벌금지, 학생인권조례, '수요자 중심의 교육'을 기치로 내건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개혁’ 등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다. 적자생존 시대에서 공존의 시대로 가는 길이 쉬울 리 없다. 공교육 붕괴를 해결할 근본적 해법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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