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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연금 포퓰리즘’에 휘둘리는 정치권

연금특위 활동기한 내년 5월로 연장

여야 표심에 인기 영합 정책 ‘한통속’

佛상원, 여론 반발에도 개혁안 처리

미래 세대에 희망 주는 리더십 절실


올해 3월 중순 프랑스 상원에서는 정부가 제출한 국민연금 개혁 법안을 놓고 장시간 토론이 이어졌다. 당시 의사당 밖에서는 36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의 개혁안은 현재 62세인 정년을 2030년까지 64세로 단계적으로 높여 연금 수령 개시 시점을 늦추고 납입 근속 기간도 42년에서 1년 늘리는 내용이 골자였다. 여론 조사에서는 연금 개혁안에 반대하는 비율이 70% 수준에 달했다. 하지만 상원은 치열한 토론을 거쳐 56.7%의 찬성률로 개혁안을 가결했다. 비록 인기 없는 정책이라도 프랑스 미래를 위해서라면 국민 반대를 무릅쓰고 개혁을 강행해야 한다는 의원들의 고뇌에 찬 결정이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TV에 직접 출연해 연금 개혁의 당위성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에서 뚝심 있는 정치인의 면모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우리 정치권은 표심만 따지느라 연금 개혁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이달 말로 종료되는 활동 기한을 내년 5월 말까지 연장할 예정이다. 올 4월 공적연금 구조 개혁을 핑계로 특위 활동 기한을 10월 말까지 늦췄는데 또다시 7개월이나 연장한다는 것이다. 활동 기한을 내년 5월 말로 잡은 것은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해 그 뒤로 미루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선거가 끝나고 의원들 운명이 뒤바뀐 상황에서 누가 인기 없는 정책을 책임지겠는가. 여야가 표심을 의식해 인기 영합 정책에 매달려 연금 개혁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연금특위가 내세운 활동 기한 연장의 사유도 납득하기 어렵다. 공론화위원회와 이해관계자위원회를 만들어 개혁안을 조정하겠다고 하지만 여론 수렴을 내세워 최대한 시간을 끌겠다는 속셈일 것이다. 노조나 자영업자·경영자단체 등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개혁안을 고집한다면 배는 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

국민 노후의 안전판인 국민연금을 지속 가능한 체제로 만들려면 ‘더 내고 늦게 받는’ 방식으로 제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 지난달 정부 산하 위원회도 ‘더 내고 늦게 받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사실상 실천만 남은 상태에서 좌고우면하는 정치권의 눈치 보기는 새삼 혀를 차게 만든다. 우리나라의 연금 개혁은 프랑스보다 훨씬 시급하다. 보험료율이 현재 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8.2%의 절반에 불과한 데다 합계출산율은 0.78명(2022년)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아 연금 재정이 급속히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국민연금이 2039년 적자로 전환되고 2055년 소진될 것이라는 국회예산정책처의 전망도 나와 있다. 연금 고갈이 예고된 상황에서 개혁을 미루는 것은 결국 미래 세대에 ‘연금 폭탄’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일이다. 여야가 국가의 핵심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하기는커녕 이해득실에 휘말려 국회 본연의 역할마저 내팽개친 것이다. 눈앞의 총선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국가 미래를 먼저 걱정하는 것이 정치권의 책임 있는 자세다. 당장 국민의 반대가 무섭다고 미래 세대에 보험료 폭탄을 떠넘긴다면 정치권의 책임 방기가 아닐 수 없다. 여야는 매사 선거에서의 유불리만을 따지는 무책임한 행태에서 벗어나 국민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연금 체계를 마련하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



우리 정치판에는 위기의 국민연금을 방치해놓고 선거 때마다 연금을 더 주겠다는 포퓰리즘이 활개 친다. 눈앞의 인기만을 좇는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정상배다. 정치 지도자란 모두가 싫어해도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판단되면 앞장서 이끌어가야 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정치의 입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원 표결을 건너뛴 채 연금 개혁안을 입법하는 초강수를 뒀다. 정치권은 정치 생명을 걸고 연금 개혁을 밀어붙인 마크롱 대통령의 결기를 배워야 한다. 때로는 인기가 없고 지지층의 비난을 받더라도 기꺼이 악역을 피하지 않는 정치 지도자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국익을 위해 미래 세대에 희망을 안겨주는 정치 리더십이다. 국민과의 약속인 연금 개혁마저 내팽개친다면 정치의 존재 이유를 묻는 국민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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