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외부 세계 사이 유일한 통로로 꼽히는 라파 국경 통행로로 피란민들이 몰리고 있는 가운데 가자지구에서 취재활동을 벌여 온 CNN 기자 이브라힘 다만(36)가 대피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공개됐다.
지난 16일(현지시각) CNN은 가자시티에서 남쪽으로 필사의 탈출을 한 다만 가족의 사연을 그가 찍은 영상과 함께 보도했다.
영상 속 가자지구의 모습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달리는 자동차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폭탄이 연이어 떨어지고, 폭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치솟아 오른다.
지난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습한 후 다만은 이스라엘군 당국이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를 촉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간 다만은 집에 전기, 물, 인터넷이 끊겼다는 사실에 놀랐던 것도 잠시 아파트 창문 너머로 연기와 먼지가 보이자 몇가지 필수품만 챙겨 가족을 데리고 호텔로 대피했다.
영상 속에서 다만은 “아들이 겁에 질려 있어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저도 두렵습니다”라고 말했다.
가자지구에서 태어나 자라 이스라엘과의 무력 충돌에는 익숙했던 다만이지만 이번에는 그의 가족을 비롯해 수십만명의 민간인까지 위험에 휘말리는 등 평소와 매우 상황이 다르다고 했다. 발사체를 요격할 수 있는 최첨단 아이언 돔 방어 시스템이 없는 가자 지구 사람들은 연속적인 로켓 공격에 그대로 노출돼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호텔은 이미 피난을 온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호텔에서도 밤낮으로 공습과 포격 소리가 이어졌고, 다만의 가족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호텔 생활 사흘째 되던 날 호텔 맞은편 주거용 건물까지 공격을 받았고, 다만은 자신의 먼 친척이 부상을 당해 로비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위험을 직감했다. 친척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고, 그의 셔츠와 피부가 찢겼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다.
눈앞까지 다가온 죽음의 공포에 다만의 머릿속에는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다만은 “주거용 건물에 대한 공습은 매우 파괴적이었다. 앞으로 내가 살아있을 거라고 기대할 수 없었다”며 “아내가 임신 2개월째라서 매우 힘든 순간이었다. 혹시라도 아내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까 두려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공습으로 인한 폭발음이 호텔 근처까지 들리자 곧바로 다만의 가족은 피난길에 올랐다. 다만에 따르면 그의 가족이 호텔을 떠난 후 그 일대에 로켓을 동원한 공격이 이뤄졌다.
지난 13일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지구 북쪽 주민 110만명에게 집을 떠나 남쪽으로 이동하여 위험을 피하라는 대피령을 내리자 다만 가족은 지정된 대피 경로를 따라 칸 유니스까지 이동했다고 한다. 그들이 칸 유니스로 향하던 날, 대피 경로 중 하나인 살라 알딘 거리가 광범위하게 파괴됐다고 CNN은 전했다.
다만의 가족들은 다행히 공습을 피해 큰 부상을 입지 않고 살아 남았다. 이들은 임시 거처를 찾았지만 또 다시 피난길에 오르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했다. 다만은 “다시 도망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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