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이 6일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이 사퇴한 지 닷새 만으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상파 방송 재허가, 가짜뉴스 규제 등 현안 업무가 산적해 서둘러 후임자를 내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후보자는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신뢰가 깊은 데다 강직한 성품을 가진 인물로 평가된다. 이에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있는 방통위 조직을 빠르게 안정시킬 것이라는 기대가 여권을 중심으로 나온다. 다만 반대편에서는 김 후보자가 언론·방송·통신 등 분야의 경험과 전문성이 없는 인사라고 지적한다. 특히 야당과 큰 충돌을 빚었던 이 전 위원장의 정책 기조를 상당수 이어받을 것이라는 전망에 야권에서는 강하게 비판하고 분위기다. 이에 국회 인사청문회 등 취임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많다.
6일 관가 등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방통위원장 후보자로 김홍일 권익위원장을 지명했다. 지난 1일 이동관 전 위원장이 취임 95일 만에 사퇴한 이후 5일 만에 이뤄진 인사 절차다.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김 후보자는 2013년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을 끝으로 검찰에서 물러난 이후 10년 넘게 변호사로서 권익위원회 위원장 등 법조계와 공직을 두루 거쳤다”며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읜 후에 소년 가장으로 농사일을 하면서도 세 동생의 생계와 진학을 홀로 책임지고 뒤늦게 대학에 진학한 후 법조인이 된 입지전적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김 후보자는 1956년 충남 예산 출생으로 충남 예산고와 충남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85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다음 대구지검 검사로 임관했다. 2009~2010년 대검 중앙수사부장으로 재직 당시 윤 대통령 함께 근무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 위원장은 대선 당시 윤 대통령 캠프에서 정치공작 진상규명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정부가 비교적 후임자 내정을 서둘러 진행한 것은 방통위가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앞서 이 전 위원장이 31일 사의를 표명하고 곧바로 다음 날 대통령이 수리한 것 또한 방통위 기능이 오랜 기간 정지돼서는 안된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실제 KBS 2TV, MBC, SBS UHD, 지역 MBC, 지역 민방 86곳 등에 대한 재허가 심사 및 의결을 연내 끝내야 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YTN의 최다출자자변경 승인 안건 역시 방통위가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달 30일 방통위는 유진그룹(유진이엔티)이 신청한 최다출자자변경승인에 대해 승인을 전제로 보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방송사업에 대한 경험이 없는 유진 측이 제대로 된 사업계획을 제시하지 못해 방통위는 관련 자료를 추가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제출되는 서류 등을 검토한 뒤 최종적으로 승인 여부를 결정을 지어야 한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가짜뉴스’ 대응과 ‘공영방송 새판짜기’ 또한 신임 방통위원장이 처리해야 할 업무로 분류된다. 이 전 위원장 재임 시절 방통위는 뉴스타파의 허위 인터뷰 논란 등을 계기로 가짜뉴스 규제에 드라이브를 걸어왔다. 여기에 아시안게임 중국 축구 응원 이슈까지 겹치며 대형 포털을 향한 규제의 칼까지 꺼내 들기도 했다. 최근 다소 소강 상태인 분위기지만 새 방통위원장이 취임하면 보다 정교하고 날카로운 규제 정책을 꺼내 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방통위 조직 내 안정화 또한 중요한 과제라는 설명도 적지 않다. 최근 방통위가 이슈의 중심에 올라서면서 조직 내 긴장감과 피로도가 상당히 높아진 상태다.
김 후보자의 실제 취임까지는 한 달 가량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에 급하게 서둘러도 이달 말께나 돼야 취임식이 열릴 것이라는 예상이다. 관련 절차에 따르면 위원장 지명 후 방통위가 3일 이내 인사청문 요청서를 국회에 제출하면 국회는 받은 날로부터 20일 내 청문회를 개최할 수 있다. 20일 이내 인사 청문 절차가 끝나지 않으면 대통령은 다시 10일 이내 범위에서 청문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할 수 있고 국회가 재송부 요청에 응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국회 동의 없이 임명할 수 있다.
다만 실제 취임까지 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벌써 야당에서는 ‘이동관 시즌2’라고 지적하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방송통신 분야의 경험과 전문성이 없다는 비판과 함께 김 후보자가 이른바 야권이 우려하는 ‘방송장악’에 앞장설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이날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국회 소통관에서 “방송·통신 관련 경험이나 전문성이 전혀 없는 ‘특수통 검사’가 어떻게 미디어 산업의 미래를 이끌어가겠냐”며 지명 철회를 요구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도 “방송장악 기술자의 자리를 방송의 ‘ㅂ’자도, 통신의 ‘ㅌ’자도 모르는 문외한인 검찰 출신 칼잡이에게 넘겨 언론자유의 헌법 가치와 방송 독립의 역사를 도적질하고 저항하는 언론인들에게 몽둥이질 하겠다는 윤석열 정권의 폭력적 의지를 재확인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취임 후에도 소란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 또한 많다. 총 5인의 상임위원 중 3명이 여전히 공석이기 때문이다. 앞서 야당은 이 전 위원장이 이상인 부위원장과 2인 체제로 29건의 안건을 의결해 5인 합의제의 방통위 설립 취지를 어겼다며 탄핵을 추진한 바 있다. 이에 김 후보자가 추후 방통위원장으로서 주요 안건을 처리하더라도 야당을 중심으로 한 문제 제기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상임위원 선임도 서둘러야 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도 나온다.
김 후보자는 이날 "국민에게 신뢰받고 사랑받는 공정한, 그리고 독립적인 방송통신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