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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巨野 하부구조로 전락한 민노총, 진영 정치 편승 ‘용역 투쟁’ 멈춰야”

◆정호희 전 민주노총 대변인

보수정부만 겨냥 ‘정권 퇴진’ 주장은 보편타당성 상실

야권·노조 밀착은 노동계 표 의식 포퓰리즘 입법 초래

거대 노조의 과도한 임금 인상 요구는 비정규직 양산

기득권 벗어나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책 제시해야

야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된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이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와 국회 재표결 끝에 부결로 폐기되자 민주노총이 강경 투쟁을 예고하며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더 원칙적이고 근본적인 노조법 개정안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노란봉투법 재추진 방침을 밝혔다. 자신의 노동운동이 실패했음을 인정한 정호희 전 민주노총 대변인은 1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예상됐는데도 민주노총이 더불어민주당과 연대해 노란봉투법을 밀어붙인 것은 투쟁을 위한 명분 쌓기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 문재인 정부도 노란봉투법에 소극적이었는데도 침묵했던 민주노총이 새 정부 출범 이후에 입법을 주장하는 것은 민주당을 위한 용역 투쟁을 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신당 ‘새로운선택’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정 전 대변인은 “사회적 외면을 초래할 수 있는 진영 정치 편승 투쟁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호희 전 민주노총 대변인이 11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노총의 가장 큰 문제는 진영 정치의 하부 구조로 전락했다는 점”이라며 “특정 진영만을 위한 정치 투쟁은 국민 공감은커녕 사회적 외면만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실체와 본질은 무엇인가.

△저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은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사회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해 노동자들 속으로 들어가 사회 변혁을 시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당시 대학생들은 전두환 정권에 대한 거부감으로 차라리 체제 전복을 바랐던 것 같다. 군부독재 정권을 타도하고 그 대신에 노동 해방 세상을 건설하자는 것이 당시 노동운동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허상이었다. 4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의 우리 사회는 너무 많이 변했다. 우리는 이미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만큼 달라진 대한민국에 걸맞은 노동운동이 필요하다. 지금 시대에 맞는 노동운동의 본질은 노동 존중이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신의 노동운동을 실패로 규정했는데.

△19대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총체적 부정선거로 막을 내린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경선과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난폭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이 통진당 사태를 겪으면서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노동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주체사상을 맹신하고 21세기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북한의 행태에 대해 일언반구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노동운동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노동계가 과거 8·15 노동자대회에서 대중을 동원해 통진당 내란 음모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석기 석방 투쟁’을 벌이는 것을 과연 노동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면서도 핵으로 위협하는 북한에 대해서는 핵실험을 중단하라는 논평도 내지 못한다. 노동운동의 본질인 노동 존중은 온데간데없고 보편타당성을 잃은 친북·종북 주장만 반복하는 노동계를 보면서 30여 년간의 노동운동이 실패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투쟁 자체를 목표로 삼는 노동운동은 저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민주노총을 떠났다. 노동계가 변하지 않으면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없다.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선언한 한국노총과 달리 민주노총은 참여를 거부하고 있는데.

△노사정위는 과거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진 조직이다. 그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는 참여를 결정했다. 하지만 비타협적 투쟁을 강조하는 반대파가 대의원들이 모인 자리에 시너를 뿌리면서 민주노총과 노사정위는 멀어지게 됐다. 국가의 중요한 노동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책임 회피다. 노동운동을 운운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이 정책에 반영될 기회를 거부한다는 것은 어떠한 논리로도 합리화할 수 없다. 비타협적인 투쟁만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주노총의 가장 큰 문제를 꼽는다면.

△정치권과의 연계로 진영 정치의 하부 구조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은 지금도 ‘윤석열 대통령 퇴진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권 퇴진 운동을 수도 없이 벌여왔다. 그런데 유독 문재인 정부 때는 ‘퇴진 운동’이라는 단어조차 꺼내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이 친(親)노동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정권 퇴진 운동을 하지 않은 것인가. 노동자들이 보수 정부 때와 달리 존중을 받아서 조용했던 것인가. 민주노총이 진보 정치 진영의 하부 구조를 자처하면서 빚어진 모순이다. 보수 정부만을 겨냥한 정권 퇴진 주장은 보편타당성과 일관성을 상실한 탓이 크다. 국민의 공감대는커녕 사회적 외면을 초래할 수 있는 진영 정치 편승 투쟁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대기업 노조의 힘이 세질수록 오히려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역효과가 발생하지 않은가.

△대기업 노조가 강경 일변도의 임금 협상을 통해 임금 인상률을 높일수록 조합원들이 받는 혜택은 커지게 된다. 반면 대기업은 임금 인상률만큼 원가 절감을 하기 위해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을 선발하고 하청 업체에 원가 절감을 요구하게 된다. 결국 하청 업체 근로자들은 대기업 노조의 복지 혜택을 늘려주기 위해 희생을 강요받는다. 이게 바로 노동계의 이중 구조다. 노조의 힘이 클수록 해당 기업 노조원의 임금과 복지 혜택은 개선되지만 반대로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하도급 업체 근로자의 임금은 상대적으로 더 줄어드는 이중 구조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대기업 노조가 진정한 노동운동을 추구한다면 자신들의 배만 불리는 임금 협상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도 배려해 그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자신들의 기득권 챙기기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 이중 구조 해소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거대 야당이 끝내 노란봉투법을 강행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민주당이 노란봉투법 입법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면 문재인 정부 때 압도적인 의석수를 앞세워 추진했어야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도 노란봉투법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입법에 소극적이었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도 그 당시에 아무 말을 하지 않다가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 노란봉투법 입법을 주장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높은데도 이를 밀어붙이는 것은 투쟁을 위한 명분 쌓기용에 불과하다. 이미 노란봉투법 추진의 진정성이 훼손된 만큼 대중적인 호소력이 많이 떨어진다. 또 일각에서는 노란봉투법에 대해 ‘민주당의 민주노총 용역 입법’이라고 주장하지만 반대로 민주노총이 ‘민주당을 위한 용역 투쟁’을 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민주당과 민주노총은 노란봉투법에 소극적이었던 문재인 정부 당시 왜 침묵했는지 답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은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때도 총파업을 벌였는데.

△문재인 정부 당시 일본 오염수 방류 문제가 불거졌는데 민주노총은 그때도 침묵했다. 대한민국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의장국으로 선출된 후 문재인 정부의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국회에서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계획이 IAEA의 절차에 맞는다면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 때는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일본이 오염수를 방류하자 정권 퇴진 운동을 벌였다. 정치 진영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민주노총에 대해 과연 얼마나 국민이 공감할 수 있을까. 동일한 사안인데도 진보와 보수 정권에 따라 민주노총이 다른 주장을 하는 것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민주노총이 현재 야권과 연계된 정치 투쟁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동계가 야권과 밀착하는 것은 정치 세력을 자신의 우호 집단으로 삼기 위한 것이다. 야권 역시 노동계가 자신들을 대신해 정부 여당을 공격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노동계와 야권이 공생 관계를 지속하면 결국 노조의 기득권 지키기로 이어질 수 있다. 노동계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입법을 조장할 수 있는 만큼 민주노총과 야권의 밀착은 많은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선거철마다 민주화운동을 거친 586세대의 ‘용퇴론’이 제기되는데.

△군부독재 시절 고작 4~5년 학생운동을 한 경력을 내세워 386세대(30대, 1980년대 대학생, 1960년대 출생)가 486을 거쳐 586·686까지 30년 넘게 우려먹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급기야 586세대로 분류되는 야권 인사가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30여 년 전의 학생운동 경력으로 우리 사회에서 언제까지 ‘등대’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리와 기득권 지키기에 연연할 것인가. 이제는 586들이 미래 세대가 말 등에 올라탈 수 있도록 돕는 ‘등자’ 역할을 해야 한다. 미래 세대가 586세대를 발판으로 삼아 우리 정치를 이끌어가도록 도와야 한다.

-민주노총을 떠나 제3지대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조국 사태 이후 불거진 진영 논리와 포퓰리즘 정치에 신물이 나 ‘성찰과모색’이라는 모임에 참여한 뒤 올해 초부터 제3지대 정치 운동을 하고 있다. 저의 노동운동이 실패했음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성찰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민주노총을 떠났다고 해서 ‘배신자’ 취급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고 용인하지도 않을 것이다. ‘배신’이라는 말은 민주당 2중대를 자처하는 자신들과 민주당에서 한자리 차지하려고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전직 민주노총 간부들이 들어야 할 말이다.

◆He is…

1964년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동국대 사대부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서울 구로와 인천·부산 등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며 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2003년에 화물연대를 조직하고 파업을 주도해 1년여 동안 구속 수감됐다. 2010년부터 6년간 민주노총 대변인을 지낸 후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현재 신당 ‘새로운선택’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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