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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군사반란 진압군’ 김오랑 중령 추모제… 일반인 발길도 북적

지난해 추모객 40명… 올해는 150여 명 참석

경남 김해·서울 국립현충원 등에서 진행

12일 경남 김해시 인제로 51번길 김해삼성초등학교 옆 길에 세워진 고 김오랑 중령 흉상 앞에서 여야 정치권과 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44주기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경남 김해시 삼정동의 한 산책로. 12·12 군사반란을 저지하다 반란군 세력의 총탄을 맞고 전사한 고(故) 김오랑 중령의 흉상 앞에 150여 명의 방문객이 고개를 숙이고 김 중령을 추모했다. 김오랑 추모회 회원 등 40여 명만이 참석했던 지난해 추모제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12일 김해인물연구회 등은 이날 오전 10시 ‘참군인 김오랑 중령 추모회’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김 중령의 조카 김영진(67)씨와 김해인물연구회, 활천동 주민자치위원회 관계자를 비롯해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경남 김해시 갑)과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등이 참석했다.

김영진씨는 “참군인의 길을 걷다 장렬히 전사한 삼촌의 모습을 ‘서울의 봄;을 통해 국민에게 알려지고, 이렇게 추모할 수 있게 돼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같은 시각,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도 김 중령의 44주기 추모 행사가 진행됐다. 행사에는 김준철 김오랑 기념사업회 사무처장 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12·12사태 당시 숨진 정선엽 병장과 박윤관 상병이 안치된 8번 묘역에서 시작해 29번 묘역에 안치된 김 중령의 묘역을 방문하는 것으로 추모제를 진행했다.



특히 올해는 일반인 추모객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김 중령이 최근 관객 수 7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에서 배우 정해인씨가 연기한 오진호 소령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김 사무처장은 “지난해에는 40여 명이 추모 행사에 참석했는데, 올해는 1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했다”며 “국립현충원 행사는 외부에 알리지 않고 간소하게 진행했는데, 학생이나 직장인 분들이 묘역을 찾아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중령은 1944년 경남 김해군 김해읍에서 태어나 1965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1969년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맹호부대 소속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으며, 12·12 군사반란 당시에는 정병주 육군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 소령이었던 김 중령은 신군부 측 세력인 3공수여단 군인 10여 명이 정 사령관을 불법체포하기 위해 사령부에 진입하자 홀로 교전을 벌였고, 끝내 총탄에 맞고 전사했다. 이후 1990년 중령으로 특진 추서됐다.

진압군 소속이던 정 병장은 국방부 벙커를 지키던 중 맞닥뜨린 제1공수특전여단에 저항하다 총격을 받고 전사했다. 신군부 측 소속이던 박 상병은 육군참모총장의 초소를 지키다 이들을 진압하러 온 해병대 병력의 총탄을 맞아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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