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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연습이 답'…근육 키우듯이 조금씩 시도하기

[가지가지로 세상읽기]<9>

■김관숙 선거연수원 초빙교수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글쓰기'

직장인과 학생에게도 필수 기술

이미지 = 최정문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클레이 셔키는 “현재는 역사상 가장 표현력이 뛰어난 시대”라고 말했다. 속담처럼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너끈히 갚을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단문이 난무하고, 말 줄이기에 익숙한 세대가 넘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요즘 직장인들은 140자가 넘으면 조리 있게 말하고 쓰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꼬집었듯이,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길게 표현하기가 어렵기만 하다. 글쓰기는 어렵지만 평생 필요한 능력임이 틀림없다. 게다가 챗GPT가 한 해 동안 이룬 업적은 또 어떠한가. 인간보다도 매끈히, 더 빨리, 많이, 다양하게 써내고 있다. 이제 쓰기조차 인공지능의 몫이 되지 않을까 하는 무서운 예감까지 든다.

‘글을 쓰면 밥이 나오느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글쓰기가 밥 먹여준다”고 답하고 싶다. 많은 성공한 작가들을 보면 글쓰기가 부와 성공의 지름길임을 보여준다. 남들은 돈을 주고 사는 상품과 서비스를 자세하고 친절한 리뷰만으로 무상 제공받는 블로거들이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글쓰기 능력으로 팔로워와 ‘좋아요’ 숫자가 달라지며, 수입으로 직결되기도 한다. 글쓰기는 돈이 된다.

일반적으로 글쓰기는 여러 분야에서 업무 성과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여겨진다. 예로부터 글쓰기는 인정받을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글을 잘 쓰는 것이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갖는 지름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대학 입시위원회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글쓰기를 잘하는 것이 일자리를 얻는 데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물론이고, 또한 고액 연봉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고 한다. 미국 전체의 일자리 중 3분의 2가 글쓰기 능력이 필요하고, 특히 고임금 직종인 서비스나 금융, 보험, 부동산 부문으로 가면 50%가 글쓰기 능력과 직결된다는 것이다.

통계 조사가 없을뿐 우리라고 형편이 다를까. 주변을 보면 글쓰기 때문에 업무능력이 과소평가 되는 직장인들도 많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2005년 잡코리아 비즈몬이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업무 문서 작성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대답이 72.1%나 됐고, 상사에게 제출한 문서를 반려당한 경험이 있다는 답 또한 59.2%가 됐다. 학생들은 또 어떤가. 지필평가의 서술형 문제나 수행평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글쓰기로 인해 성적이 좌우되며 내신이 달라진다. 입시에서도 논술은 결코 쉽지는 않지만 중요한 대입 전략 중의 하나다.

글쓰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까. 글쓰기는 읽기와 마찬가지로 편집과 재구성을 통해 새로운 생각을 꺼내는 작업이다. 이 또한 전두엽에 불을 밝히는 작업이며, 절대 쉽지 않은 고난도의 사고 과정이다. 당나라와 송나라 때 뛰어난 문장가를 일컫는 ‘당송팔대가’ 중 한 명인 구양수가 글을 잘 쓰는 비결을 ‘다독(多讀)·다작(多作)·다상량(多商量)’이라고 했듯이, 읽고 쓰는 가운데 생각이 깊어진다. 게다가 그는 고쳐쓰기의 대가였다는데 심지어 초고에서 한 글자도 남아있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톨스토이나 헤밍웨이의 작품들도 훌륭한 고쳐쓰기의 결과물이다. 하여 글쓰기가 쉽고 즐거운 사람은 드물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써야 한다.

챗GPT가 붐을 일으키고, 이제는 활자 시대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인대도, 글쓰기는 여전히 미래인재들의 핵심역량일 것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읽기도 쓰기도 낯설기만 한 디지털 원주민인 MZ와 알파 세대 아이들이 겪을 글쓰기의 지난한 과정을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 여기 선물상자가 하나 있다고 치자. 무엇이 들어있을까. 성인 강의 때 질문을 던지면 흔히 돈이라든지 금이라든지 아니면 명품 가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심지어 로또 1등 당첨 용지라고도 하는 이도 있었다. 확실히 어른들의 자본주의 욕망의 스펙트럼은 넓고도 깊어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 반면 아이들의 경우엔 대부분 먹을 것을 이야기한다. 그 역시 원초적인 욕망이라서일까.

“이 상자 안에는 뭐가 들었을까.”

“아이스크림이요.”

“어떻게 생겼어. 무슨 색깔이지.”

“크기는 어때. 혹시 냄새가 나니.”

“옳지! 오감을 활용해서 문장으로 표현해 봐. 흉내 내는 말을 쓰면 더 좋겠네.”



“빨간색 딸기 아이스크림이 컵 안에 담겨 있어요.”

“그럼 맛은 어떨 것 같아. 먹고 싶니. 네가 꼭 먹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이제 네 생각을 담아 세 문장으로 만들어보렴.”

“빨간색 딸기 아이스크림이 납작한 유리컵 안에 담겨 있어요. 달콤한 향기가 나는 것이 무척 맛있어 보여요. 저는 아이스크림을 아주 좋아하는데 빨리 꺼내 먹고 싶어요. 그렇지 않으면 다 녹아버리겠어요. 녹아서 못 먹으면 너무 아깝잖아요. 제가 먹을 수 있다면 정말 신날 거예요.”

“아이스크림 하면 뭐가 생각나니. 떠오르는 기억이 있니. 그걸 한 번 시로 써볼까.”

생각이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다. 그 생각의 꼬리를 잘 잡도록 도와주는 것이 글쓰기 선생(선험자)의 역할이다. 생각은 그 프레임을 잘게 자를수록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진다. 무한한 생각의 날개가 펼쳐지는 것이다. 물론 잘 쓰는 친구는 별다른 도움 없이도 스스로 생각의 꼬리를 부여잡고 더 깊게, 더 넓게 스스로 사고의 폭을 확장해 나간다. 하지만 대부분 아이는 막연함과 두려움 속에 글쓰기의 미로를 헤매게 돼 있다. 자, 그 막막한 글쓰기의 숲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생각의 끄트머리를 잘 잡고 조금씩 조금씩 사고의 실타래를 풀어나가게 도와 줄 일이다. 저 크레타의 미궁에서 미노타우르스를 무찌르고 나오는 테세우스처럼. 그 짜릿한 성취감과 통쾌함, 의기양양함을 우리 아이들이 꼭 맛봤으면 좋겠다. 글쓰기야말로 머리에 불을 켜는 생각의 좋은 도구이므로!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라틴어로 ‘지혜로운 사람’) 아닌가.

어디 아이들만의 문제랴. 글쓰기가 여전히 버거운 당신도 오늘은 쓰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심이 어떨지. 글을 잘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조건 쓰는 것이다. 생각의 실타래를 조심조심 풀며 조금씩 계속 쓰다 보면 어느덧 몸의 근육이 단단해지는 것처럼 글쓰기 근육도 키워진다. 그저 생각의 단상을 끄적거리는 낙서라도 좋다. 그 구절이 담담한 에세이, 혹은 절절한 소설의 첫 문장이 될 수도 있다. 그 첫걸음으로 당신은 시인이 될 수도 있고, 아련한 연서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추운 계절엔 글쓰기라는 따뜻한 모닥불을 머리에도 가슴에도 한번들 지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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