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법안은 주로 강력한 플랫폼 사업자들을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해 그들의 부당한 행위를 제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공정위가 선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행위는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최혜 대우 요구 등이다.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을 참조해 만들고자 하는 이 법안의 주된 문제점은 세 가지 주요 인식 오류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시장 동질성의 착각’이다. EU는 27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거대한 정치경제 공동체로 4억 4500만 명의 인구와 17조 7000억 달러의 국내총생산(GDP)을 가진 디지털 단일 시장이다. 또 유럽에서는 대부분의 플랫폼 서비스가 미국의 빅테크에 의존하고 있다. 구글이 유럽 내 검색엔진 시장의 91.5%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유럽 시장을 고려하면 DMA는 유럽의 자국 기업을 보호하는 의미 있는 규제로 작용한다.
하지만 한국은 인구 5100만 명, GDP 2조 6000억 달러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플랫폼이 글로벌 빅테크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플랫폼 서비스 시장의 이질성을 고려하지 않고 유럽 방식을 기반으로 한 규제를 도입할 경우 국내 플랫폼이 규제 대상이 돼 결국 국내 기업이 역차별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규제 패권주의’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규제 패권주의는 특정 국가나 지역이 자신의 규제 기준을 다른 국가나 지역에 강요하거나 국제적으로 확산시키려는 행위를 말한다. DMA의 주된 목적은 미국·유럽 간의 디지털 시장 불균형을 규제로 해소하는 것이다. EU가 DMA에 입각해 게이트키퍼(지배적 플랫폼)로 알파벳(구글), 메타,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기업 5개와 중국의 바이트댄스를 지정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반면 한국은 국제적인 규제 프레임워크를 관철시킬 위치에 있지 않아 이런 규제가 국내 기업과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셋째, ‘시장 지배와 경쟁 역학의 구분 실패’다. 유럽에서는 글로벌 빅테크가 시장을 지배하지만 국내 플랫폼 시장은 경쟁 역학이 더 두드러진다. 이는 기업 간 상호작용과 경쟁을 의미한다.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기에 앞서 플랫폼 간 경쟁성, 가치 사슬의 다양성, 시장 참여 기회의 크기, 기술 혁신을 통한 새로운 시장 창출, 기술과 가격경쟁을 통한 소비자 편익 등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경제와 사회 시스템의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정책 효과는 예상과 다를 수 있다. 오늘날 유연한 자율 규제가 강조되는 배경이다. 특히 사전 입법 규제는 플랫폼 주변 시장의 투자를 저해하고 국가의 디지털 생태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 국내 플랫폼의 약화는 스타트업과 소상공인의 시장 참여 기회를 줄일 수 있다.
변화의 속도와 폭이 큰 디지털 대전환기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시장과 기술의 역동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규제는 경제를 위축시킬 수 있다. 기업이 법을 준수하고 시장 변화에 대응하며 소비자의 목소리에 민첩하게 반응해 스스로 역할을 조정할 수 있는 자율 규제의 접근 방식이 우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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