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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없던 '삼성공화국'…검찰이 끊어낼 차례다

[View&Insight]

삼성이 불법 저지른다는 착각

단 1개 혐의도 유죄 인정안돼

檢, 불복·승복 기로서 결단을

사법리스크에 흘려보낸 골든타임

다시 '불확실성 늪' 빠뜨려선 안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무죄 선고 결과를 지켜본 삼성 계열사의 전직 사장은 6일 “기쁘다기보다 허망하다”고 말했다. 검찰은 2020년 9월 이 회장을 기소하면서 자본시장법 위반, 배임, 외부감사법 위반 등 3개 죄목에 19개 혐의를 적용했으나 재판부는 단 한 건도 유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국내 최대 기업의 발목을 3년 5개월 동안 옭아맨 사건의 결말치고는 너무나 허망하다는 게 재계 주요 인사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그는 “이번 재판을 계기로 삼성이 국정에 관여하고, 삼성이 법을 어기고, 삼성이 시장을 흔들 수 있다는 ‘삼성 공화국’이라는 망령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 공화국. 기원이 불분명한 이 단어를 사전식으로 풀이하면 ‘삼성이 자금력과 정보력을 앞세워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심’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같은 인물들이 2005년부터 이 말을 전파했던 전도사들이다.

삼성그룹 전체를 7년 넘게 늪으로 밀어넣었던 국정 농단의 배경에도 바로 이 근거 없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큰 사건을 삼성이 몰랐을 리 없다는 의심이 검찰의 과욕과 만나 ‘묵시적 청탁’이라는 황당한 논리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사실상 제왕적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나라에서 기업 총수가 대통령의 요구를 따른 것이 묵시적 청탁에 해당하므로 죄가 된다는 게 검찰의 논리다. 이 회장은 국정 농단 사건으로 2017년 구속 기소된 후 1년 반 넘게 수감됐고 이후 지속적으로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다. 벼랑 끝에서 무한 경쟁을 해왔던 삼성그룹은 허망하게 골든타임을 그렇게 흘려보내야 했다.

국정농단에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았던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이 2022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가석방으로 출소하며 구치소 관계자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욱이 3년 5개월 만에 나온 재판부의 판결은 삼성이 멋대로 법을 어기고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근거가 없는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재판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이 법적 기준에 충족했고 주주에게 손해를 줄 의도가 있지 않다”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도 기준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삼성의 고위 중역들이 오직 이 회장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뛰고 있다는 음모론도 함께 무너졌다.

재판부는 삼성물산 합병에 대해 “이 회장의 승계를 유일한 목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고 오히려 사업적 목적도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기업과 주주들의 이익을 배신해가며 회사 합병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실제 기자가 만나본 삼성전자의 최고경영자(CEO)나 임원들은 어떻게 제품 경쟁력을 높이고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을지를 최우선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생존 이외의 다른 이슈들이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였다.



삼성이 사법 리스크 굴레 속에서 받은 유무형의 피해는 액수로 환산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당장 국정 농단 사건이 터진 2016년 이후 빅딜이 실종됐다. 투자은행(IB) 업계에 잠깐이라도 몸담았던 사람이라면 삼성이 놓친 글로벌 대형 기업들 2~3개 정도는 줄줄이 읊어낼 수 있을 정도다. 지금은 반도체가 국가 안보 산업으로 떠오르면서 당시 가치의 10배가 넘는 돈을 줘도 인수가 어렵게 된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이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지 못하면서 비메모리반도체 같은 사업에서 주도권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TSMC 창업자인 모리스 창 회장이 2023년 대만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시대착오적인 삼성 공화국이라는 테제는 국익을 넘어 국가 안보에도 실체적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유례없는 전쟁 압박 속에서도 반중(反中)을 앞세운 대만 민주진보당이 재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TSMC라는 초대기업 덕분이었다. 대만은 인구가 2300만 명에 불과한 중견국가이지만 TSMC가 생산하는 반도체는 세계 곳곳에 침투해 있어 전쟁이 일어날 경우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0.2%가 증발한다는 게 블룸버그의 분석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줄어든 전 세계 GDP가 3.6%라는 점을 감안하면 TSMC의 힘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사회가 이번 ‘전부 무죄’ 선고를 계기로 삼성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때때로 분출되는 반(反)삼성 정서는 더 이상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무엇보다 검찰의 역할이 중요하다. 재판 결과에 불복해 삼성을 다시 한번 사법과 불확실성의 늪으로 밀어넣을지 여부가 검찰의 판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은 5일 선고 직후 “판결의 사실 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하게 검토·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결정은 우리 사회를 바꿀 단초가 될 수 있다. 결자해지. 기소한 19개 혐의가 모두 무죄로 판명된 지금, 검찰도 이제 결단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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