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다수의 벤처·스타트업 업계가 몸담은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지난해 인수합병(M&A) 규모가 전년 대비 34%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종 규제에서 벗어난 외국계 플랫폼이 수년 간 국내 정보기술(IT) 시장을 잠식한 사이 혁신적인 중소기업 투자를 통한 네이버(Naver)·카카오(035720)의 신(新) 성장 동력이 상실했기 때문이다. 경기 악화로 M&A 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된 가운데 소프트웨어 산업 M&A 시장의 침체 수준이 더욱 심화했다는 분석이다.
윤석열 정부가 네이버와 카카오 등 대형 플랫폼을 염두에 둔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플랫폼법)’을 밀어붙일 경우 벤처 생태계가 M&A 거래 실종으로 인해 공멸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M&A는 시장 지배력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경영 수단인데 플랫폼법이 이를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법의 핵심은 시장 지배력을 지닌 일정 기준 이상 플랫폼 사업자를 사전 지정해 자사 우대, 끼워 팔기, 경쟁 플랫폼 이용 제한 등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7일 서울경제신문이 한국M&A거래소로부터 입수한 통계를 분석한 결과 소프트웨어 업종 M&A 거래금액은 2023년 총 1조5737억 원으로 전년(2조4016억원) 대비 34.5% 줄었다. 거래건수도 같은 기간 82건에서 69건으로 15.8% 감소했다.
최근 5년 이래 최대 규모였던 2019년 5조4822억 원과 비교하면 지난해의 M&A 시장은 71.3% 쪼그라들었다. 특히 스타트업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비상장 기업의 인수 실적만 보면 5조393억 원에서 8898억 원으로 4년새 82.3% 감소했다.
업계에선 소프트웨어 기업에 대한 인수 감소 추세를 놓고 네이버, 카카오가 역차별당하는 와중에 구글 유튜브, 넷플릭스 등 외국 플랫폼이 급성장한 데 따른 결과라고 분석했다. 국내 IT 업계가 외국계의 공세에 점차 밀려 투자 동력을 상실했다는 얘기다. 개인정보보호와 법인세가 대표적인 역차별 사례로 꼽힌다.
마케팅에 쓰이는 개인정보가 '선택 사항'으로 분류돼 국내 사업자는 개인 동의를 받기 어려운 반면 구글 등 해외 기업은 필수·선택 구분 없이 포괄적 동의만 받아 개인정보를 자유롭게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다. 또한 구글과 넷플릭스는 조세 부담을 회피 중이다. 규제에서 벗어난 유튜브는 지난해 12월 MAU 기준 카카오톡을 제치고 국내 1위 애플리케이션에 올라섰다. 카카오는 지난해부터 사법 리스크에 휘말리면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M&A 시장의 전반적인 침체도 소프트웨어 기업 M&A에 악영향을 미쳤다. 서울경제신문 리그 테이블에 따르면 2023년 M&A 시장에서 자금 납입을 완료한 거래는 총 429건으로 거래액은 61조 5712억 원이다. 지난해 561건의 거래가 성사돼 총 72조 3778억 원의 거래가 종료된 것과 비교해 건수는 23%, 규모는 15% 이상 감소했다.
이런 와중에 플랫폼법은 국내 IT 업계의 ‘퇴보’를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벤처·스타트업 창업자는 대형 플랫폼으로 성장시키거나 인수될 수 있다는 희망이 꺾이는 한편 국내 대형 IT 업체들은 더 이상 M&A를 통한 신 성장 동력 창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글이 플랫폼법의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된다고 하더라도 구글은 미국에서 얼마든지 스타트업 인수가 가능하다. 반면 네이버·카카오는 지배력 강화를 우려해 더 이상 국내 스타트업을 사들이기 힘들어진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M&A 시장이 위축되면 스타트업 엑시트가 어려워져 기업가치가 오를 수 없게 된다”면서 “플랫폼법이 스타트업 업계 전반의 성장을 가로막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벤처창업학회장을 지낸 전성민 가천대 교수 또한 지난달 31일 열린 '플랫폼 규제 법안과 디지털 경제의 미래' 세미나에서 IT 시장에서 인수합병(M&A)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플랫폼법이 시행될 경우 M&A 시장이 침체되면서 스타트업 창업은 물론 성장까지 위축될 것이란 얘기다.
실제로 스타트업 지원 기관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국내 스타트업 대표·창업자·공동창업자 1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2.8%가 플랫폼법이 스타트업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응답은 14.1%에 그쳤다. 플랫폼법이 미칠 영향에 대해선 ‘스타트업의 성장동력이 감소할 것’이란 응답이 50.9%, ‘스타트업이 엑시트하거나 투자받기 어려워질 것’이란 응답이 32.1%에 달했다.
밴처 업계에선 플랫폼법이 얼어붙은 투자 시장에 직격탄을 날리는 규제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내도 투자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지난해 국내 벤처투자액이 5조3388억원으로 전년 대비 52% 감소한 것으로 추계했다. 같은 기간 투자 건수도 1765건에서 1284건으로 27.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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