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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 이어 금융지원 통한 경기 띄우기…"인플레 역습 우려"

[커지는 유동성 함정]

◆이슈&워치-정치권 총선 전 돈풀기 남발

시중 통화량 6개월 연속 늘었는데

유동성 확대로 물가압력 더 커져

고금리 장기화→서민 부담 가중

통화정책 운용환경 악화 불보듯





5대 시중은행장과 국책은행장, 정부 부처 장관들이 모여 76조 원 규모의 기업대출 지원책을 공식 발표한 15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첨단산업의 경쟁력 강화, 중소·중견기업의 신산업 진출 및 수출 확대 등에 원활한 금융 지원으로 올해 수출 7000억 달러, 민간 투자 150조 원 목표를 달성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초대형 금융 지원 사업이 기업 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지원 계획은 이뿐만이 아니다. 전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올해 3조 7100억 원으로 편성된 소상공인 정책자금을 2배 이상 늘리고 저신용자 대환대출을 1조 원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대규모 대출 공급이 어떤 식으로든 기업과 소상공인들의 자금 사정을 돕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이미 시중에 풀린 돈이 넘쳐 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광의통화량(M2)은 평균 잔액 기준 3894조 9000억 원으로 6개월 연속 전월 대비 증가세를 기록했다. M2는 시중 통화량을 보여준다. 2022년 12월 3722조 7000억 원과 비교해 1년도 안 돼 172조 2000억 원이나 불어났다. 지난해 1월부터 기준금리는 3.5%로 유지되고 있는 데도 나온 결과다.

돈풀기는 더 있다. 국민의힘이 총선 공약으로 내세운 사업들의 규모가 66조 5000억 원, 야당이 108조 원에 달한다. 금융투자세 폐지 같은 감세 규모만 2조 7539억 원이다. 통화 당국인 한국은행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보다 최대 2%포인트 낮은 기준금리를 줄곧 유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확장적인 통화정책을 펴고 있다는 말이다. 한은은 이창용 총재를 중심으로 시중은행을 통한 간접 대출인 금융중개지원대출 확대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한은은 이미 지난달 9조 원 규모의 금중대를 통한 자금 공급책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기업들이 ‘돈맥경화’를 겪을 만큼 자금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지금이 위기도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말 908조 7000억 원 수준이었던 기업대출은 지난해 11월 말 현재 1316조 6000억 원으로 44.9%나 급증했다. 계속되는 대출 증가에 장사를 해 이자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 ‘좀비 기업’은 덩달아 늘고 있다. 외감기업 중 한계기업 비중은 2019년 11.3%에서 2022년 14.1%까지 치솟았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기업 쪽 얘기를 들어보면 투자 애로 요인으로 자금 부족보다는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을 꼽는 목소리가 많다”며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불안한 대외 여건에도 버틸 경제 체력을 키우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정부 안팎에서는 이번 대규모 금융 지원이 사실상 총선용 경기 부양책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 나온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번 76조 원 지원안을 두고 “경기 부양 효과가 크다”고 전했다. 표심을 노린 발언이지만 이번 정책의 실제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예산과 감세에 이은 대출 공급 확대가 가뜩이나 불안한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7%로 점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한은은 다소 낮은 2.6%를 예측하고 있지만 과일 값 상승에 중동 불안에 따른 유가 상승 요인이 남아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조차 2~3월 물가가 3% 안팎으로 다시 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고금리로 부담이 커진 기업을 돕는다며 내놓은 지원책이 거꾸로 ‘물가 자극→고금리 장기화→취약층 부담 가중’으로 이어지게 된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한 금융 지원은 필요하다”면서도 “문제는 긴축이 이어지고 있는 지금 시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금융 지원) 약속을 쏟아내 통화정책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금융 확대에 대한 걱정도 많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이달 초 열린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한국의 기업부채가 선진국들 대비 상당히 높은데 그 배경에는 선진국을 압도할 정도의 광범위한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지원책도 민관 공동 형식이 강하다. 2010년대 중반 이후 가계부채가 급증한 것도 서민 보호를 앞세운 공적 금융기관의 지원 확대가 원인이라는 게 KDI의 판단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사를 동원한 대출 확대는 재정 부담을 늘리지 않고 경기를 띄울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과 당국 입장에서 손쉬운 우회로가 될 수 있다”며 “은행을 통해 대출을 더 많이 풀면 안 그래도 시중에 유동성이 넘쳐 나는 상황에서 물가를 더 올릴 수 있고 이에 따른 손해는 전체 국민이 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일부 기업은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경기 띄우기 쪽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며 “정부 예산을 쓰지 않고 금융에 자꾸 의존하면 관치 금융의 덫에 빠져 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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