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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서 항암치료 왔는데 일정 꼬여"…볼모 잡힌 환자들 '분통'

[전공의 집단사직]

◆ 전국 곳곳 의료공백 현실화

빅5 병원 수술·진료 일정 조정에

"제때 치료 못 받나" 불안감 확산

응급의료 현장 전공의 비중 높아

장기화땐 의료사고 발생 가능성

향후 2~3주가 의료대란 분수령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19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외래 진료 대기실에서 수많은 환자들이 진료 순번을 기다리고 있다. 이호재 기자




박민수(오른쪽) 보건복지부 2차관이 19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지난 20년간 의사를 한 명도 증원 안 한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제일 중요한 건 환자인데 환자를 볼모로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봅니다.”

“의사들이 생명을 살리는 공부를 했으면 국민을 위해서 일해야지 자기 밥그릇만 챙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의료수가가 부족하다면 인상을 요구해야지 환자들 목숨을 담보로 잡는 것은 안 되죠.”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본격화하면서 19일 전국 곳곳의 병원에서는 의료대란이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아직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마비 현상까지는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전공의들의 이탈이 늘어나면서 진료 공백과 수술 차질 등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이른바 서울 ‘빅5(서울대·세브란스·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성모)’ 병원의 경우 수술·진료 일정을 대폭 조정하면서 환자들은 적기에 진료를 받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감과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은 오전부터 외래 진료를 받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온 환자와 보호자들로 북적였다. 병원 진료실 앞에는 수십 명의 환자와 보호자들이 앉아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고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마포구에 거주하는 A(49) 씨는 “대형 병원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환자들”이라며 “환자를 비롯한 보호자들이 업무 일정을 조정하고 와야 하고 지방에서 올라오는 분들도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진료가 취소되거나 연기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생긴다”고 우려했다. 남편의 심장 질환으로 병원을 방문했다는 B(71) 씨는 “남편이 심장 약을 먹고 있는데 오늘 아침으로 약이 다 떨어졌다”며 “병원에 오기 전 의사 사직으로 약을 못 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과 걱정이 컸다. 환자 입장에는 의사 숫자가 충분해야 불안하지 않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의 일부 전공의들은 사직서 제출 후 현장을 이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신촌세브란스 소아청소년과 의국장은 입장문을 통해 “19일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1~3년 차 사직서를 일괄적으로 전달하고 오전 7시부터 파업에 들어간다”고 밝힌 바 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집단 사직에 대비해 현재 수술실을 평상시의 50~60% 수준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외래 진료가 취소되거나 병원 침상을 줄이는 일 등은 아직까지는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환자들도 전공의 파업으로 인한 진료 차질을 걱정했다. 천안에서 온 이 모(69) 씨는 “담도암 수술 후 3년째 추적 관찰을 하고 있고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방문한다”며 “전이되는 것을 막으려고 꾸준히 병원에 오는 건데 의사들이 파업에 나선다니 제대로 진료를 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된다”고 우려했다. 췌장암 투병 중인 C(64) 씨는 “파업 때문인지는 몰라도 의사가 항암 일정을 확실하게 알려주지 않고 있다”며 “빅5 병원이라고 해서 더 나은 시설과 의술을 기대하고 충청도에서 서울로 올라왔는데 계속 기다려야 하니 불안한 마음이 크다”고 토로했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앞으로 2~3주가 의료대란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증 환자는 2차 종합병원으로 전원하고 중증 환자 위주로 수술을 진행한다 하더라도 당장 골든타임을 지켜야 할 응급의료 현장에서 전공의들이 차지하는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교수 인력과 전임의들이 전공의가 맡던 당직 근무를 대신한다고 하더라도 파업이 장기화하면 이들 인력의 업무 피로도가 가중돼 의료사고 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정통령 중앙비상진료대책상황실장은 “2000년 전공의 집단행동 당시의 경험에 비춰보면 대체적으로 30~50% 정도의 진료 축소가 이뤄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 각 병원에서 교수 인력과 전임의, 입원 전담의, 중환자실 전담의 등과 같은 인력이 있어서 2~3주 정도는 축소된 진료 체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그 이상으로 (파업) 기간이 길어지게 되면 이들의 피로도가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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