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영원하지만 불멸할 수 없다(루치오 폰타나, ‘공간주의-제1차 공간주의선언문’ 중에서)
현대미술에 이름을 남긴 거장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전복’이다. 기존의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의미의 작품을 창조해 세상 사람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여러가지 논란 속에서 살아남은 작가는 거장이 되고, 영원히 기억된다.
그러한 작가의 대표 사례가 바로 이탈리아 ‘루치오 폰타나(1890~1968)다. 그는 캔버스를 면도날로 그어 캔버스 뒤의 세계까지 작품의 일부로 차용, 2차원을 3차원으로 만든 작가다. 작품을 파괴함으로써 예술의 영원성을 입증했다.
강원도 강릉의 솔올미술관에서 공간예술의 거장 루치오 폰타나의 아시아 첫 개인전 ‘루치오 폰타나: 공간·기다림’이 열린다. 솔올미술관은 교동홀딩스가 강릉시에 기부채납한 대지에 터를 잡은 강릉의 새로운 공공미술관이다. 솔올미술관은 개관전 작가로 루치오 폰타나를 선택해 개관 전부터 화제가 됐다.
이번 개관전에서는 작가가 1947년 ‘공간주의-제1차 공간주의 선언’을 발표한 이후의 주요 작품을 집중 조명한다. 제1전시실에서는 1947년 폰타나의 ‘공간주의 선언문’ 발표 이후 제작된 대표적 21점을 볼 수 있다. 작가는 2차원 평면 작품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캔버스에 구멍을 내거나 칼자국을 낸 ‘뚫기(Buchi)’와 ‘베기(Tagli)’ 연작을 통해 자신의 공간 개념을 발전 시켰다. 현실의 물리학 개념을 작품의 미학적 영역으로 끌어들인 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중에서도 노란색 배경의 부키·탈리 연작을 살펴볼 수 있다.
제2전시실과 로비에는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공간환경 연작 6점이 설치된다. 작가는 공간주의 발표를 통해 형태와 색, 소리의 조형성을 공간에 담아내고 거기에 감상자의 움직임을 더해 작품을 4차원적으로 확장하고자 했다. ‘네온이 있는 공간환경’ 등 ‘공간환경(Ambiente spaziale)’ 연작이 당시 탄생한 작품이다. 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각 작품의 원본이 전시된 1940~1960년대 당시 공간과 네온 설치를 그대로 재현했다.
관객은 물질에서 나아가 빛과 공간으로 확장된 폰타나의 공간환경 안으로 들어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또한 로비에는 ‘제 9회 밀라노트리엔날레를 위한 네온구조’ 작품이 마치 미술관의 조명인 것처럼 설치됐다. 해당 작품은 판매되지 않고 루치오 폰타나 재단이 영구 소장한다. 현재 미술관은 이 작품의 영구 임대를 재단과 논의 중이다.
다만 미술관 운영과 관련해서는 한동안 잡음도 예상된다. 미술관은 루치오폰타나 전시가 끝난 후 5월부터 영국 테이트 모던 관장인 프란시스 모리스가 객원 큐레이터로 참여하는 아그네스 마틴의 기획 전시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져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또한 백색 건축의 거장 리처드 마이어의 철학을 이어가는 마이어파트너스가 건립을 주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 초대 관장인 김석모 관장이 마틴 전시를 끝으로 임기를 마칠 예정이어서 미술관 운영에 공백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다음 관장은 강릉시에서 지정해야 하는데 아직은 시행사인 교동홀딩스가 미술관의 운영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 운영의 주체가 결정되지 않아 마틴 이후 다음 전시 계획도 불투명한 상태다. 새롭게 지어진 공공미술관이 하반기부터 빈 건물로 유지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편 미술관은 세계 미술과 한국 미술을 연결하기 위한 취지로 루치오 폰타나 전시와 함께 ‘인 다이얼로그: 곽인식’을 개최한다. ‘인 다이얼로그’는 세계 현대미술의 주요 맥락을 조명하는 솔올 미술관은 기획전시와 함께 미학적 담론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한국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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