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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처벌 강화, 사고 감소 보장하지 않아…“근로자 통제력 따라 달라”

작업통제권 없으면 사고율·사회적 비용 최대 7배↑

50인 미만 영세 중소기업 근무방식 등 관리 어려워

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 건물에 중처법 유예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이 2월 임시국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의 50인 미만 사업장 확대 적용 유예안을 놓고 다시 한 번 충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학계에서 최고경영자(CEO)나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중대재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왔다. 사업자가 근로자에 대한 작업통제권이 없는 상황을 가정하면 사업자에 대한 강한 처벌이 사고 확률과 사회적 비용을 최대 7배까지 높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대재해법은 1월 국회에서 유예안 처리가 최종 불발되면서 지난달 27일부로 50인 미만 영세사업자에게도 적용되고 있다.

19일 한국경제학회 따르면 박재옥·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달 말 ‘중대재해처벌법은 재해를 감소할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한국경제포럼 4호에 게재했다. 게임이론 수학모델로 분석한 결과 단순히 사업주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사고 발생 확률 및 사회적 비용을 최적화 할 수 없다는 것이 기본 접근 틀이다.

박 교수와 한 교수는 사업자 뿐 아니라 근로자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야 사고 발생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사업주가 시간과 돈을 들여 작업장 안전 수칙을 강화하고 예방 수단을 마련해도 근로자들이 이를 따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중대처벌법은 경영인에 대한 처벌에만 집중한다. 따라서 처벌을 피하고자 하는 사업자의 주의 수준은 높아지는 반면 근로자의 주의 수준은 변하지 않거나 오히려 떨어지게 된다. 근로자에게 책임을 물지 않는데다 상황에 따라 손해 배상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 예방에 주의를 기울이는데 드는 시간과 자본 역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에 양측이 충분한 수준의 주의를 기울일 때보다 어느 한쪽이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사회적 비용은 되 증가하게 된다.

연구진은 이를 수치화된 게임이론 모델로 증명했다. 사업자가 근로자에게 미칠 수 있는 작업통제권 수준에 따라 1~5단계로 구분한 뒤 시나리오별로 중대재해법 적용의 효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사업주가 작업통제력이 거의 없는 상황인 1단계에서는 중대재해법 적용 후 사고발생률과 사회적 비용이 각각 7.07배, 7.10배 급증했다. 사업주가 낮은 수준의 통제력을 유지하는 2단계의 경우 사고발생률은 변하지 않았지만 사회적 비용은 여전히 1.13배 높아졌다. 박 교수와 한 교수는 이에 대해 “작업 통제력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는 중대재해법이 사고 발생 위험도 높이고 사회적 비용도 높이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라며 “통제력이 비교적 낮은 경우 사고발생율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사업주 비용이 과다하게 증가해 총 비용이 늘어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사업주의 작업통제력이 어느정도 보장된 3단계 부터는 사고발생률과 사회적 비용이 다소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주가 근로자의 작업 행태를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서만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유의미한 개선책이 된다는 의미다. 다만 3~5단계의 사회적 비용은 여전히 이론적으로 산출한 최적점보다 높은 수준인 것으로 분석됐다.



문제는 현실에서 경영인들이 현장 근로자들에 대해 충분한 통제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연구진은 “근로자의 인권이 강화되고 근무시간도 주 52시간으로 제한되며 노동조합이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대재해법이 적용된 이후 산업재해 통계를 분석해본 결과 중대재해법 적용의 유의미한 효과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과 2023년의 1~3분기 누적 산업현장 사망사고 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사망자 수는 202 명에서 192 명으로 줄었지만 사망사고 건수는 180건에서 188건으로 늘었다. 특히 건설업의 경우 사망자수는 82명에서 97명으로, 사망사고 건수는 74건에서 95건으로 모두 늘기도 했다. 제조업 현장에서 사망자수와 사망사고 건수가 모두 소폭 감소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박 교수와 한 교수는 이를 두고 “제조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근로자들의 주의 수준을 감독하기 용이하지만 건설현장은 근로 감독이 어렵기 때문”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의 효과를 제대로 계측하기 위해서는 사업주 통제력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50인 미만 영업장의 경우 대기업·중견기업에 비해 체계적인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섣부른 중대재해법 적용 확대가 오히려 더 많은 산업 재해 발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편 국회에는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중대재해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50인 미만의 영세 사업자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을 2년 더 유예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다. 앞서 1월 국회에서도 여야는 개정안 통과를 두고 대치를 이어간 바 있다. 논의 막판에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의 ‘산업보건안전청 설치’ 조건을 일부 수용했지만 민주당이 거절하면서 중대재해법은 27일부로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여야의 입장에 변화가 없는데다 총선은 물론 쌍특검법 등 굵직한 현안을 두고도 대치하고 있어 2월 국회에서 중대재해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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