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럭키 나너 콘디쇼닝 샴푸'. 얼마 전 변수빈 디프다제주 대표와 일행들이 한림 해변에서 주운 쓰레기입니다. 찾아보니 무려 1980년 출시된 제품. 변 대표는 이런 근대문화유산 같은 해안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대수롭지도 않단 투로 말했습니다. "대구직할시 시절(1995년 대구광역시 승격) 생산된 50원짜리 과자 껍데기도 주워봤고 초코파이 옛날 버전도 흔하고. 연도별로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나옵니다." 그렇게 디프다제주가 주운 쓰레기는 올해만 벌써 4톤. 연말이면 10톤을 훌쩍 넘어설 전망입니다.
제주 생활 14년차, 봉그깅 함께 해요
제주 출신은 아니지만 제주도 거주 14년차인 변 대표는 2018년 디프다제주를 설립하고 '봉그깅'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봉그깅은 줍는다는 뜻의 제주어인 '봉그다'와 달리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을 합친 말. 취미로 프리다이빙을 하다가 바닷속 쓰레기에 놀라서 쓰레기 수거를 시작했고(지금도 여름에는 거의 매주 바닷속으로 들어갈 정도), 안전 문제 때문에 누구나 바닷속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봉그깅도 주최(매월 모집 공지는 디프다제주 인스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쓰레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유령어업(다시읽기)'의 주범으로 지목됐던 그물은 이제 어구실명제가 적용됐지만, 고기잡이배가 바다에서 버리는 '일반 쓰레기'는 아직 많다는변 대표의 설명. 예를 들어 배 한 척에 1.5리터 생수 두 박스를 실어서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죄다 버리고 들어온다고 합니다. 변 대표는 "해양 쓰레기는 강을 통해서도 유입되기 때문에, 강 하구에 차단 시설을 설치해 막아야 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활동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고민도 많아졌습니다. 예를 들어 어촌계 분들은 당신들의 생업 터전인 바닷속에 낯선 사람들이 들어가는 걸 싫어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도 외지인들이 와서 수산물을 잡아가고 캐가기 때문입니다. 이런 오해와 갈등을 막기 위해 제주도청이든 해양수산부든 해안정화단체 인증이라도 해주면 어민 분들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될텐데 그런 부분이 부족하다 합니다. 지자체 지원을 받기 위해 서류작업이 늘어나서 정작 쓰레기 수거할 시간이 줄어든다거나, 지원을 받았는데 정작 지원금 사용 항목에 수중 카메라는 없다든가 같은 고민도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제주도에만 15개 이상의 해안정화단체가 생길 만큼 환경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난 건 반갑지만, 다들 정보가 없다 보니 몰라서 좌충우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해양쓰레기는 일반 쓰레기로 버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거나, 해양쓰레기를 줍다가 다치는 경우에 대한 대비책이 없다거나 등등. 변 대표는 "지자체에서 이런 단체들을 조사하고 모아서 간담회라도 했으면 좋겠다"며 아주 소박한(!) 희망사항을 전했습니다.
◆해양쓰레기, 일쓰로 버리면 안 되는 이유
해양쓰레기는 바닷물의 염분이 잔뜩 묻어있기 때문에 쓰레기 소각로를 고장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 쓰레기로 버리면 안 되고 따로 탈염 작업을 해야되는데, 제주도엔 탈염처리시설이 없습니다. 변 대표는 "재활용마저 할 수 없는 해양쓰레기를 축구장 두 개 정도 면적에 쌓아두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마음이 닿는 곳을 향해, 느려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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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대표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는데 활동하다보니 이렇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환경운동가=투쟁이란 이미지가 강하지만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고 누구나 환경운동가가 될 수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더 작은 행동, 예를 들어 분리배출 잘하는 것부터가 환경운동이라고요.
"텀블러 쓰기는 쉬운데 비닐봉지 안 쓰기는 어렵다고요? 그럼 텀블러 열심히 쓰는 데 집중하면서 그 다음에는 빨대 안 쓰기에 도전해봐요. 가끔 채식도 좋습니다. 너무 자신을 옥죌 필요는 없죠."
그렇게 마음이 닿는 곳을 향해 진지한 걸음을 옮겨 온 변 대표는 이번에 플리츠마마의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 캠페인을 통해서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을 마음대로 사는(LIVE 또는 BUY의 중의적 의미)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제주도 해변도, 바닷속도 더 깨끗해질테니까요.
"폐플라스틱으로 티셔츠를 만드는 회사라면 협업을 거절했겠지만 오래 쓰는 가방을 재활용 소재로 만드는 건 적극 찬성"이라 플리츠마마의 손을 잡았다는 변 대표의 이야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 영상은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묘하게 힘이 주니까 꼭 보시길 권해봅니다. 마지막으로, 폐페트병·폐어구·헌 옷 등 폐플라스틱으로 제품을 만들어 온 플리츠마마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 지난 레터(왕종미 플리츠마마 대표님 인터뷰)도 남기고 갑니다.
※기사 내 링크는 서울경제신문 홈페이지에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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