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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美 ‘우크라 전쟁’서 무엇을 해야 하나

파리드 자카리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 관영 TV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 자신은 물론 해외의 청취자와 시청자들이 우리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며 직접 일러줬다. “서방세계는 우크라이나전을 러시아에 대한 전술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하지만 우리에게는 국가의 운명이 걸린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는 게 푸틴의 설명이다. 필자가 보기에 서구의 전략적 실수는 이같은 현실을 무시한 데서 비롯됐다.

새로 나온 각종 자료가 확인해주듯 러시아 경제는 대다수 전문가들이 전망했던 것보다 수월하게 서방의 제재를 견뎌냈다.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3% 성장했고, 2022년초 18%까지 치솟았던 인플레이션은 7.5%선에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 국영은행이자 국내 최대 은행인 스베르방크는 모기지 붐에 힘입어 지난 한해 수익이 5배가 늘어나 역대 최고수준에 도달했다.

모스크바가 서방제재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상호의존적인 글로벌 경제체제 아래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측이 러시아에 대한 포괄적인 제재를 취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서구의 높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전면적 금수조치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러시아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의 집단 철수도 신통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 이들이 빠져나간 빈자리는 비서방 업체들이 곧바로 채웠다. 스타벅스가 비운 매장마다 현지 브랜드인 ‘스타스커피’가 입주해 러시아 고객들의 카페인 욕구를 충족시켰다. 필자가 만난 인도 대기업 중역들은 서방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철수하며 급매물로 내놓은 자산을 헐값에 거둬들여 짭짤한 영업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우리가 새겨야 할 교훈이 있다. 세계 경제의 긴밀한 상호의존성으로 인해 러시아산 원유를 금지하면 지구촌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가장 큰 교훈은 경제압박만으로는 제재대상국의 항복을 받아내기 힘들다는 점이다. 지난 수십 년간 워싱턴은 쿠바·북한·이란·베네수엘라에 혹독한 경제제재를 가했다. 하지만 이번에 제재를 받은 러시아를 포함해 문제가 된 정책을 번복한 정권이 단 한 곳이라고 있던가?



러시아 경제가 제재를 이겨낸 가장 큰 이유는 푸틴이 실행가능한 모든 대응조치를 취한 데 있다. 그는 경제를 전시체제로 전환했고, 애국적인 수사를 동원해 고립감에 빠진 러시아인들을 하나로 결집시켰다. 중앙은행이 가파른 금리인상을 단행하고, 재무부가 신속히 외국환관리에 나선 데 이어 정부가 지출을 극적으로 늘리면서 이른바 러시아의 국방공업경제(miltary-industrial economy) 시스템이 탄생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러시아 경제와 사회 전반에 심각하고도 장기적인 대가를 치르게 만드는 정책이다. 그러나 움직임이 더딘 만성 스태그네이션은 즉각적이고 날카로운 급성 경기침체보다 충격이 덜하다. 푸틴은 자신이 서방세계를 상대로 러시아의 국운이 걸린 이판사판의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종종 전술핵무기 사용을 입에 올리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번 전쟁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여러모로 큰 일을 해냈다. 서방국들뿐 아니라 일본·한국·싱가포르와 같은 비서방국들까지 우크라이나 지원대열에 합류시켰다. 키이우에 방대한 인도적·물질적 지원도 아낌없이 했다.

바이든을 비롯한 서방세계 지도자들은 푸틴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전의 승리를 위해 올인할 것이라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이를 통해 시간은 더 이상 푸틴의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 동결된 러시아 중앙은행의 지급준비금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키이우가 필요로 하는 모든 종류의 무기를 신속히 제공해야 한다. 푸틴이 느껴야 할 압박감은 장기적인 경제적 하강이 아니라 단기적인 군사작전 차질, 점령지 상실, 사상자수 증가와 러시아군의 사기저하다.

서방측 전략의 핵심 목표는 푸틴이 이기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지적은 전적으로 옳다. 설사 그것이 서방측 개입확대와 심지어 지상군 투입을 의미하더라도 러시아의 침공이 성공하는 것을 맥없이 지켜보는 것보다 낫다. 마크롱은 이번 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전은 프랑스와 유럽의 실존에 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서방국들은 그들이 실존적 위기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로 뭉쳐 러시아의 위협에 단호히 대응해야만 우크라이나전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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