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순방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첫 방문지인 프랑스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만나 “미국 주도의 탈동조화(공급망 배제)와 산업 및 공급망 교란 행위에 공동으로 반대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해법 등을 두고는 이견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양국 정상은 경제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했다. 미국 주도의 대중국 견제에 균열을 유도하는 중국과 프랑스의 밀착이 ‘경제’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강화하는 양상이다.
7일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 등에 따르면 프랑스를 국빈 방문한 시 주석은 6일(현지 시간) 마크롱 대통령과 파리 엘리제궁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양국은 상호 이익을 옹호하고 탈동조화와 산업 및 공급망 교란 행위에 공동으로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그러면서 “프랑스가 더 많은 첨단 및 고부가가치 제품을 중국에 수출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는 미국 주도로 서방국가들이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디커플링, 디리스킹(위험 제거) 대열에 프랑스가 동참하지 말 것을 직접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마크롱 대통령은 시 주석의 관련 발언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면서도 “중국 기업에 대한 차별 정책을 시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그는 “프랑스는 중국에 더 많은 농산물을 수출하기를 희망함과 동시에 중국에 대한 시장 개방을 유지할 것”이라며 양국 간 경제 협력을 강조했다. 대표적인 농산물 과잉생산국인 프랑스는 중국으로의 농산물 수출 확대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시 주석,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포함한 3자 회담에서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을 언급했지만 시 주석과의 양자 회담에서는 다소 다른 견해를 보였다. 시 주석과 양자 회담을 마친 마크롱 대통령은 무역 이슈와 관련해 “EU의 무역정책은 긴장을 조성하려는 의지가 아니다”라며 시 주석의 우려를 불식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3자 회담에서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중국의 과잉생산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고 말했으나 시 주석은 “중국의 풍부한 공급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했을 뿐 과잉생산은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시 주석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용해 제3국을 비방하거나 ‘신냉전’을 부추기는 것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은 “복잡한 역사를 고려할 때 중국이 러시아에 무기 판매나 원조를 자제하고 군사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이중 용도 물품의 수출을 엄격히 통제하겠다는 약속을 환영한다”고 답했다. 시 주석은 올해 파리 올림픽 기간 휴전을 하자는 마크롱 대통령의 제안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양자 회담을 마친 두 정상은 중동 정세, 인공지능(AI) 및 글로벌 거버넌스, 생물 다양성 및 해양, 농업 교류 및 협력에 관한 4개의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녹색개발, 항공, 농업 식품, 상업, 인문 등 20건에 가까운 양자 협력 문서에 서명했다.
2013년 취임 이후 세 번째로 프랑스를 방문한 시 주석은 이날 저녁 엘리제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 초대돼 영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참석했다. 두 정상 부부는 순방 이틀째인 7일 프랑스 남부 오트피레네로 자리를 옮겨 점심을 함께한다. 시 주석은 프랑스에 이어 중국과 우호 관계에 있는 세르비아와 헝가리를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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