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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빅테크는 없다 [윤민혁의 실리콘밸리View]

초거대 AI 경쟁에서 탈락한 IBM

HP, 인텔 등 화려했던 테크의 몰락

마케팅 혁명의 상징 애플도 위기 감지

혁신 멈추는 순간 쇠락의 길로 들어서


인공지능(AI)의 태초에 IBM이 있었다. 1997년 인간 체스 챔피언을 처음으로 꺾은 ‘딥 블루’, 2011년 퀴즈쇼 제퍼디에서 74연승을 거둔 ‘왓슨’은 AI가 인간을 압도할 것이라는 공상과학 속 ‘상상’을 현실로 보여줬다. 왓슨이 이 세상을 완전히 바꿀 듯했다. 기업들은 왓슨을 모셔오기 바빴다. 국내에서도 왓슨 도입 소식이 잇따랐다. 가천대 길병원, 부산대병원, SK그룹, 롯데그룹, 현대카드 등이 대표적이다. 찰나의 영광이었다. 오늘날 왓슨은 실패작으로 낙인찍힌 채 잊혀지는 중이다. IBM은 챗GPT가 등장하기도 전인 2022년 1월 왓슨 프로젝트를 포기했다. IBM은 이후 ‘왓슨X’라는 이름의 AI 플랫폼을 내놓았으나 타사 AI를 제공하는 플랫폼에 그쳤다. 초거대 AI 경쟁에서 탈락한 것이다. 최초로 D램을 개발하고 개인용컴퓨터(PC)와 AI 시대를 열었던 IBM은 빅테크로도 언급되지 못하는 처지다.

칼럼 내용을 토대로 구글 제미나이가 그려낸 이미지.




실리콘밸리에 자리 잡은 첫 테크기업은 휴렛팩커드(HP)였다. 1939년 HP가 설립된 팰로앨토의 허름한 차고는 ‘실리콘밸리 탄생지’라는 이름의 미 연방 사적(史蹟)으로 지정됐다. HP 출신 인물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을 창업하고 애플Ⅰ·Ⅱ를 홀로 설계해 ‘PC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티브 워즈니악이 대표적이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HP도 이제는 잊혀지고 있다. 실리콘밸리 그 자체이던 HP를 빅테크로 언급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제록스는 한때 세계 시가총액 10위 안에 들던 회사다. 오늘날 검색을 ‘구글링’이라 부르듯 복사를 ‘제록싱’이라 칭하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제록스 팰로앨토연구소(PARC)는 전설적인 공간이다. 문자가 아닌 이미지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 인터넷을 연결해주는 이더넷, 마우스, 워드프로세서의 필수 기술인 위즈위그(WYSIWYG),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이 모두 PARC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최근 제록스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감원뿐이다. 제록스는 이제 빅테크는커녕 테크기업으로도 불리지 않는다.

집적회로(IC) 발명자 로버트 노이스와 ‘무어의 법칙’ 창시자 고든 무어가 창립한 인텔은 한때 반도체 그 자체였다. ‘실리콘밸리의 시장(Mayor)’이라는 노이스의 별명이 그 시절 인텔의 위세를 상징한다. 인텔은 여전히 중앙처리장치(CPU) 시장 최강자지만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전 최고경영자(CEO) 시절의 ‘적폐’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복귀 부담에 침체기를 지나는 중이다. 이달 17일 기준 인텔의 시총은 1356억 달러. 시총 2조 2700억 달러인 엔비디아는 물론 경쟁사 AMD(2658억 달러)에도 밀린다. 이제 반도체 대표주로 인텔을 꼽는 이는 없다.

애플은 마케팅 혁명을 불러일으킨 회사다. 빅브러더를 부숴버리는 매킨토시 ‘1984’ 광고는 고전이 된 지 오래다. 이런 애플이 최근 광고로 망신살을 샀다. 유압프레스로 ‘문화’의 상징들을 파괴하는 아이패드 광고가 거센 비난에 직면한 것이다. 과거 애플이었다면 ‘쿨하다’는 반응을 얻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충성 소비자층인 창작자들의 대대적인 공세였다. 오랜 혁신 부재에 테크계 그 어떤 기업보다도 굳건하던 애플 ‘팬심’에 서서히 균열이 가고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비전프로는 출시 넉 달이 채 되지 않아 실패 선고를 받았다. AI 도입이 늦어지며 아이폰 점유율 또한 하락세다. 일각에서는 팀 쿡 CEO를 대체할 ‘차기 리더십’까지 거론하는 실정이다.



생성형 AI의 기틀인 ‘트랜스포머’ 구조는 구글이 발명했다. ‘AI 원조’를 자부하던 구글의 입지도 오픈AI와 챗GPT의 등장에 흔들리는 중이다. 구글 I/O 2024에서는 과거와 다른 조급함이 감지됐다. 오픈AI가 언급될 때 구글 임직원들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감추지 못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I/O 전날을 겨냥한 오픈AI의 GPT-4o 발표에 “미시적 순간”이라고 일축했으나 약진하는 경쟁사를 애써 무시하려는 듯한 인상을 숨기지 못했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메모리 1위 자리에 안주해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에서 뒤처진 삼성전자가 떠오른다. 천년 왕조가 없듯 영원한 빅테크도 없다. 혁신이 멈출 때 어제의 영광은 내일의 몰락으로 이어질 뿐이다.

윤민혁 실리콘밸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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