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정상회담 이후 북중관계가 심상치 않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북중관계는 일시적인 현상에서 볼 것은 아니다. 일제 강점기 항일투쟁 시기부터 현대까지 역사적인 맥락에서 북중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소련과 손잡고 6·25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은 중국의 항미원조 참전으로 기사회생했다. 냉전 시기 북한은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독자노선을 내세우며 등거리 외교로 체제 생존을 모색했다. 1990년 초 한중수교는 북한에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고난의 행군기에 중국이 외면하자 북한은 독자 생존의 길에 내몰렸다. 2000년 초 남북정상회담이후 한숨 돌리면서 대미협상을 전개하던 북한은 부시 행정부의 출범과 9·11 테러 이후 외교적 고립에 직면한다.
전통적인 동맹이론에 따르면 동맹관계가 비대칭적일 경우 강대국은 약소국의 행위에 ‘연루’ 위험을 느끼고 약소국은 강대국으로부터의 ‘방기’ 위험을 느낀다. 중국은 2차 북핵 위기 때 미국과의 갈등을 피하면서 6자회담이라는 기제를 통해 연루의 위험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이러한 중국의 소극적 태도가 불만스러웠던 북한은 김정일 건강 이상 이후 6자회담 협상을 거부하면서 김정은 세습체제 공고화에 주력한다. 2009년 북한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출범 직후 2차 핵실험을 단행하고 김정은 정권 집권 후 2013년에는 3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동맹이론상 중국은 후견국으로서의 지위를 활용해 북한에게 방기 위협을 가하면서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했어야 했다. 그러나 북한의 2차 핵실험에도, 천안함 사태 이후 남북관계의 경색에도 북한에 대한 중국의 압박은 형식적이었다.
약소국이라도 강대국의 전략적 이익과 결부될 경우 약소국은 강대국에 대해 오히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동맹 강대국이 방기 위험을 느끼는 경우도 있는데 최근 10여년 간의 북중관계에서 외교적 승자는 마치 북한처럼 보인다. 중국의 북한 방기가 아니라 북한의 중국 방기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막을 내린다. 새로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미국의 아시아 회귀 이후 경쟁 구도의 태동과 함께 동아시아 질서의 중요성을 재인식한다. 핵을 개발하면서 지역질서를 어지럽히는 북한이 짐(burden)인지 자산(asset)인지에 대한 여러 평가를 거친 중국은 해양세력의 완충지대로서 북한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전략적 결론에 도달한다.
중국은 김정은 집권 이후 4차례의 핵실험 기간 강대국으로서의 체면상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제재에는 적극 동참했지만 북한의 체제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대북압박에는 정작 소극적인 입장을 유지해 왔다. 시진핑 집권 2기 때는 북한이 2018년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 나서자 자국의 영향력 감소와 패싱을 우려해 5차례나 북중 정상간 이벤트를 마련하기도 한다. 이러한 북중관계는 냉전시기부터 이미 상승과 부침을 반복해 온 것으로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여전히 이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북중간의 소원한 기류는 북한의 대러 접근을 지켜보겠다는 것이지 역사적으로 흘러온 중국의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굳이 해석하자면 향후 북러관계가 중국의 핵심이익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사전 경고적 의미 정도로 보인다. 지금 몇 가지의 현상에 고무돼 북중 간에 균열이 생겼으니 이를 활용해 북한을 더욱 압박해야 한다는 주장은 북중관계의 역사를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오로지 한미동맹 강화만을 외쳐 온 현 정부가 이른바 ‘중국활용론’을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중관계의 역사만큼이나 중국과의 관계를 치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북중관계의 변화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미중관계의 변화라는 상위 국제정치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당장 올해 미 대선 결과가 미중관계와 하위 정치구조의 변화를 추동할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은 있는가? 일본은 대미·대북관계에 있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데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현상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외교전략을 재정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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