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기 침체 우려는 과도하지만 시장 분위기 자체가 침체 쪽으로 세력이 형성됐습니다. 좋은 지표가 나올 때까지 변동성이 지속할 수 있습니다.”(임재균 KB증권 연구원)
미국 경기 둔화 우려에 엔캐리트레이드(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국가 자산에 투자) 청산, 중동 위기 확산 공포가 겹치면서 아시아 증시가 대폭락했지만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미국 경제 침체 전망은 아직 이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시장의 공포심이 커지고 있는 데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물리적 충돌로 격화하게 되면 최악의 경우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둔화 속 물가 상승)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5일 “미국의 지난달 실업률이 4.3%로 나왔는데 이는 경기 침체라고 판단할 정도까지는 아니다”라며 “시장이 과하게 반응한 면이 있다”고 짚었다.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도 “침체를 논하려면 2분기 연속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나와야 하는데 현재 상황에서 미국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은 낮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의 올 2분기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연율 기준 2.8%를 기록했다.
월가도 미국의 경기가 급격히 나빠질 가능성에 촉각을 기울이면서도 침체로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4일(현지 시간) 골드만삭스는 내년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을 15%에서 25%로 잡았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경기 침체 위험이 제한적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고용 지표 악화와 금융시장 패닉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내릴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골드만삭스는 연준이 9·11·12월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모두 0.25%포인트씩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JP모건체이스와 씨티그룹은 연준이 다음 달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리는 ‘빅컷’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관건은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면전 가능성이다. 전문가들은 전면전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지만 두 나라 사이의 전쟁이 본격화할 경우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물류비와 유가 상승으로 인해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이 될 것”이라며 “만약 서방 진영이 개입해 전선이 커진다면 글로벌 경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짚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확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며 “유가가 오르면 우리나라 수입액이 늘어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물가에도 부담이 된다. 이 경우 한은 입장에서는 금리 인하를 택하기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 안팎에서도 시장이 패닉에 빠진 상태에서 국제유가가 치솟으면 스태그플레이션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시장의 반응이 과도하다는 생각”이라면서도 “시장이 겁에 질려 있는 만큼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현실화하면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 경우 한국 경제에도 직격탄이 예상된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 8곳이 제시한 한국의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6월 말 2.7%에서 7월 말 2.5%로 0.2%포인트 낮아졌다. 글로벌 경제·금융 상황 전개에 따라 추가적인 조정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다만 아직 국제유가는 잠잠하다. 중동 지역 긴장 고조에도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인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가 확산하면서 국제유가는 되레 8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5일(현지 시간) 브렌트유 선물은 전 거래일보다 0.1% 하락한 배럴당 76.77달러를 기록했고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0.2% 하락한 배럴당 73.39달러를 기록했다. 호주뉴질랜드은행(ANZ)은 “(아직은 괜찮지만) 중동 갈등이 심화하면 원유 수출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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