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핵심 인사들이 전 세계 금융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금리 정책을 둘러싸고 일주일 만에 입장이 바뀌며 시장에 혼란을 가져왔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추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뒤 며칠 안 돼 우치다 신이치 부총재가 ‘당분간 인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시장이 급등락을 거듭한 것이다. 앞서 깜짝 금리 인상을 단행한 7월 금융정책회의에서는 ‘2025년도(2025년 4월∼2026년 3월) 후반까지 정책금리를 1%까지 올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8일 일본 주요 언론에 따르면 우치다 신이치 일본은행 부총재는 전날 한 강연에서 “금융 자본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금리를 인상할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분간은 현 수준으로 금융 완화를 계속해 갈 필요가 있다고 말해 추가 금리 인상에 부정적인 자세를 나타냈다. 이는 지난달 31일 일본이 깜짝 금리 인상을 단행한 뒤 우에다 가즈오 총재가 추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던 것과는 상반된 입장이다. 일본은행은 7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 정책금리를 종전 0∼0.1%에서 0.25% 정도로 인상했다. 우에다 총재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전망에 맞춰 물가가 움직이면 “계속해서 정책 금리를 인상해 간다”고 말했다. 우에다 총재의 발언으로 시장에서는 미일 금리차 축소를 전망하면서 엔화가 강세로 돌아섰다. 이런 가운데 미국 경기 둔화 우려가 겹치면서 엔고·달러 약세에 속도가 붙었고, 캐리트레이드(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고금리 자산에 투자) 축소·청산이 잇따르며 닛케이 평균이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가 하루 만에 다시 반등하는 등 변동성에 노출됐다.
우치다 부총재는 “우리나라의 경우 일정한 속도로 금리를 인상하지 않으면 비하인드 더 커브(손쓰기 늦은 상태)에 빠질 상황은 아니다”라며 “굳이 위험할 때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강연 후 기자회견에서는 7월 말의 금리 인상 후의 시장에 대해 “정책 변경에 수반해 엔저의 수정이 진행된 것이 우리나라의 주가가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하락한 요인의 하나”라고 말해 금리 인상의 영향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 후 벌어진 예상치 못한 시장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궤도를 수정하고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강연 직후 도쿄 주식시장에서는 금리 인상에 대한 경계감이 후퇴하며 일본 닛케이 평균 주가가 일시적으로 전일 대비 1000엔 이상 상승했다. 엔화 환율도 달러당 147엔대까지 엔화 약세, 달러 강세가 진행됐다.
이날 공표된 일본은행의 7월 금융정책회의 주요 발언을 보면 ‘2025년 후반까지 1%까지 금리를 올릴 필요가 있다’ 등 인상에 긍정적인 의견이 다수 제시됐다. 한 위원은 “3월의 정책 변경(마이너스 금리 해제) 이후, 경제와 물가는 대체로 예상대로 추이하고 있다”며 “현재의 경제 상태는 지금의 극히 낮은 정책금리를 어느 정도 인상할 수 있을 정도로 좋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위원은 “2025년도 후반의 ‘물가안정 목표’ 실현을 전제로 한다면 그때까지 정책금리를 중립금리까지 인상해 나가야 한다”며 “중립금리는 최소한 1% 정도로 보고 있다”는 의견을 냈다. 중립금리는 경제가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 압력이 없는 잠재성장률 수준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이론적 금리수준을 말한다. 이 위원은 “급격한 금리 인상을 피하기 위해 경제와 물가 반응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적시에 단계적으로 금리를 인상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뒷받침할 데이터가 적어 다음 회의에서 좀 더 수치를 점검하자며 7월 인상에 반대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일주일 사이 미국의 경기 둔화 우려라는 이슈가 발생했지만, 금융 정책 전반의 ‘방향성’이 단숨에 바뀌는 상황에 시장 일각에서는 비판도 제기된다. 일본은행 심의위원 출신인 다카히데 기우치 노무라종합연구소 연구원은 “일주일 전과 금융정책을 둘러싼 환경이 극적으로 변화했다고까지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본은행은) 정보 발신을 극적으로 바꿨다”며 “시장은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게 돼 앞으로의 정책 변경에서 예기치 못한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카이 사이스케 미즈호 리서치&테크놀로지 수석이코노미스트도 “우치다 부총재가 말하는 ‘금융시장이 안정된 상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시장에서는 금리 인상의 조건이나 일본은행의 정책 방향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내 금융 정책을 둘러싼 혼란과 미국 증시의 혼조세의 영향으로 이날 닛케이225평균지수는 상승과 하락을 오가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오전 한때 미국 증시 하락의 영향으로 800엔 넘게 떨어진 닛케이평균은 오후에 300엔 가까이 상승하다 전일 대비 258.47엔(0.74%) 내린 3만4831.15엔으로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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