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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트럼프를 보는 美 기업들의 착각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충동적이고 자아도취에 빠진 사업가로 일관된 정책 아젠다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게 일반의 생각이다. 그러나 개인의 정치적 이익만을 좇아 움직이는 트럼프에게도 한 가지 확고한 신념이 있다. 1987년 당시 뉴욕의 부동산개발업자에 불과했던 트럼프는 10만 달러의 거금을 들여 뉴욕타임스에 공개서한 형식의 전면광고를 냈다. ‘국민 여러분께’로 시작되는 광고문은 지금 우리의 귀에 상당히 익숙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는 “일본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지난 수 십년 동안 미국을 이용해 이익을 챙겼다”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전달하려는 핵심 메시지는 동맹국들을 위한 막대한 방위비 지출로 미국이 골병이 든 반면 군비 부담에서 벗어난 우방국들은 번영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트럼프는 어떤 해법을 제시했을까? 일본, 사우디 아라비아 등은 미국에 방위비 분담금을 지불해야 하며, 미국 정부는 이들 국가에 관세 형태로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트럼프가 지닌 세계관의 핵심이다. 이번 캠페인에서 그는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10%의 보편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수입물품에 60%의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방위공약과 관련해 트럼프는 국내총생산(GDP)의 2%로 책정된 방위비 분담금을 지불하지 않는 나토 회원국은 보호받지 못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제 몫의 분담금을 내지 않는 나토 회원국에게는 “러시아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둘 것”이라는 폭탄발언까지 내놓았다.

필자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업가들에게 반시장적이고 성장과 안정에 역행하는 그의 아젠다를 선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트럼프는 짓는 소리만 컸지 정작 심하게 물지 않는 허풍꾼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미국의 우방국을 향한 적대감과 보호주의에 대한 강한 호감은 트럼프가 지닌 이념의 상수에 해당한다.



1980년대에 선보인 트럼프의 어두운 비전은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일본과 유럽의 성장이 정체되고 중국이 급부상한 가운데 이 모든 상황을 헤치고 나온 미국은 199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GDP의 26%를 차지하는 수퍼파워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한때 유럽과 유사한 수준이었던 미국의 임금은 이제 45%의 우세를 보인다. 일본과 비교하면 임금차는 더욱 커진다. 미국의 평균임금은 7만 7000 달러로 일본의 4만 3000 달러를 한참 웃돈다. 프랑스와 같은 국가는 자국의 근로자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펼쳤고, 일본과 독일은 조직적인 산업정책을 시행했다. 정보시대에 날아오른 국가는 미국뿐이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로널드 레이건과 빌 클린턴 행정부는 일본의 질주를 막기 위해 온갖 종류의 조치를 취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일본이 정체의 수렁에 빠진 것은 정보혁명을 놓쳤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실패의 기록에도 아랑곳없이 트럼프는 중국을 상대로 효과를 입증받지 못한 조치를 다시 시도하길 원한다. 하지만 중국은 자체적인 실수로 이미 성장둔화기로 접어들었다.

지금까지의 기록은 분명하다. 트럼프의 주된 잣대인 무역적자 측면에서 보아도 중국에 매긴 관세는 실패로 끝났다. 관세 단행 이후 미국의 무역적자는 축소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확대됐다. 많은 연구보고서는 관세조치로 미국의 소비자들이 수 백 억 달러의 추가부담을 떠안았고, 기대했던 중국의 정책변경은 나타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최근 연구는 트럼프의 새로운 관세가 미국 소비자들에게 연간 5000억 달러,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는 연 1700달러의 추가 부담을 안겨줄 것으로 결론지었다. 한마디로 그의 관세정책은 인플레이션의 불씨를 되살린다는 얘기다.

트럼프의 이념적 견해는 사실과 증거로 바뀌지 않는다. 예들 들어 그는 아직도 관세를 중국을 비롯한 대상국가들이 지불하는 게 아니라 미국의 소비자들이 부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혁명적인 일을 해냈다. 세계의 안정을 떠받치고 다른 국가들이 부유해지도록 돕는다면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공존·공영의 지역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친 것이다. 이처럼 계몽된 자기이익이라는 비전은 지난 80년간 미국 외교정책의 핵심을 이뤘다. 트럼프와 JD 밴스는 이를 부인하는 대신 미국이 이룩한 가장 위대하고 오래 지속될 업적에 등을 돌리는 어둡고 편협하며 이기적인 비전을 선택하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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