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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서퍼비치 대신 낙산사로 간 MZ들 "맞는 추구미 찾아요"

조계종, 낙산사서 '나는 절로'

경쟁률 男 70대1…女 77대 1

명함·재직증명서 사전 확인

10일 강원 양양 낙산사에서 진행된 ‘나는 절로’에서 참가자들이 서로의 공통점을 적어내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열띤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양양=정혜진기자




커플로 성사된 견우 3호와 직녀 9호. 견우 3호는 직녀 9호가 더운 날씨에도 한복을 입고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모습에 반했다. 사진 제공=조계종사회복지재단


사진 제공=조계종사회복지재단


“스님들은 결혼을 하지 않는데 ‘나는 절로’ 같은 만남을 주선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견우 7호)

10일 강원도 양양 낙산사의 인월요에서 낙산사 연수원장 선일 스님과의 차담에서 도발적인 질문이 나왔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의 ‘나는 절로’를 통해 인연을 찾으러 온 참가자들 사이에서였다. 선일 스님은 “결혼하지 않고 독신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출가자의 삶을 살지만 재가자의 삶을 존중하고 적당한 거리를 둔 채 공존하는 게 불교”라며 “재가자에게는 가정이 출가자의 수행처와 같은 곳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를 통해 만난다는 음력 칠월 칠석(8월 10일)을 기념해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의 ‘나는 절로’가 오작교를 자처했다. 지난해 9월 기존 프로그램인 ‘만남템플스테이’를 개편해 5회째 진행했다. 벌써 유명 프로그램 ‘나는 솔로’ 못지 않은 인지도를 확보했다. 남성은 70대 1, 여성은 77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참가자들은 지난 10일 오전 8시 서울을 떠나 양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집결 장소 근처 역사 화장실에서도 거울을 보며 얼굴과 매무새를 점검한 채 긴장된 얼굴의 참가자들이 눈에 띄었다. 중간에 들린 홍천휴게소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탄 버스의 행선지가 ‘양리단길’ ‘양양 서퍼비치’ 등으로 쓰여있었지만 이들이 가는 곳은 달랐다. 양양 낙산사였다.

사진 제공=조계종사회복지재단




각자 속세를 떠나 견우 O호, 직녀 O호라는 1박2일 간의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았다. ‘뽑기’의 결과로 함께 앉아 갈 짝꿍을 만났다. (다음 날 선택 결과를 보니 이 뽑기는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미 이 자리에서 서로를 알아본 이들도 두 커플 있었다. 견우 5호 한용운씨와 직녀 8호는 “처음 버스를 탔을 때부터 사는 지역도 삶에 대한 생각이 잘 맞았다”며 “서로 승부욕 넘치게 게임하는 모습까지 이 사람이다 싶었다”고 전했다. 누군가에게는 양양까지의 세시간 남짓이 실제 교통 사정과는 관계 없이 도로가 시원하게 뚫린 것처럼 빠르고 누군가에게는 긴 시간이 될 터였다. 인연의 자비가 누구에게 향했는 지 대화에 집중한 뒤통수만으로도 느껴졌다.

참가자들의 자기소개는 남달랐다. 평소에 템플 스테이를 즐기는 직녀 10호는 “자연 속에서 내면을 돌아보는 절이 제 ‘추구미’(개성으로 추구하는 아름다움)와 맞는다”며 “나는 절로를 통해 저와 결이 맞는 분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그녀의 눈은 집돌이지만 최근 주짓수에 꽂혀 있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견우 7호에게 향했다. 마침 버스를 타고 오면서 끊임 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친밀감이 높아진 상태였다.

이윽고 레크리에이션 시간. 버스에서 말을 튼 짝꿍 외에는 서먹함을 보이던 이들은 레크리에이션 엠씨인 심목민씨의 진행 속에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점차 긴장이 풀어졌다. 같은 자리 뺏기 게임이더라도 “‘도반’(불도를 수행하는 벗)에 함께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 등으로 불교적 색채가 드러났다. 평화를 지향하기 때문에 ‘나는 솔로’의 상징인 ‘고독정식’도 이곳에는 없다. 차선을 선택해야 할지라도 누구나 일대일 매칭이 된다. 공통점을 찾는 게임도 호감도에 따라서 다른 답안들이 나왔다. ‘명찰 패용’ ‘정규직’ 등 단순한 답을 적은 커플들도 있는가 하면 ‘맛집리스트를 갖고 있다’ ‘하루에 만보 이상 걷는다’ 등 대화 끝에 나올 수 있는 공통점을 적어낸 커플도 있었다. 단순한 공통점을 적어냈던 견우 6호는 마음에 들었던 직녀 4호가 반대편에 앉아 있어 게임하는 내내 힐끗 보느라 집중을 못했다고 전했다.

스님들의 식사 시간인 공양 시간 역시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서 결정적인 찬스로 활용할 기회였다. 레크리에이션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직녀 8호와 직녀 4호는 각각 호감이 있었던 견우 5호와 견우 6호에게 일대일 저녁 공양 데이트를 신청했다. 남은 선택지가 몇 명 없었던 직녀 3호는 말을 거의 못 해본 견우 4호를 선택했다. (이때부터 이들 커플은 쭉 붙어 있었다.)

10일 강원 양양 낙산사에서 진행된 ‘나는 절로’에서 참가자들이 밤 10시를 넘긴 시간에도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일대일 차담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양양=정혜진기자


저녁을 먹은 뒤에도 30도를 웃도는 찜통 더위 속 견우와 직녀는 한복을 입고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15분씩 10명을 만나야 하는 일대일 차담은 밤 10시를 훌쩍 넘겼다. 아홉시가 지나면 숨소리만 들리는 곳이지만 오늘만은 스님들도 이를 눈감아줬다. 다른 곳에서라면 10명을 만나려면 몇 달을 투자해야 하지만 잘 맞는 사람들을 찾아낼 기회라는 것에 참가자들은 텐션을 끌어올렸다. 직녀 3호 지혜민씨는 “소개팅에서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오는 이들도 많은데 여기는 다르다”며 “조계종에서 직접 검증을 한 분들이다 보니 더 안심할 수 있어서 좋다”고 전했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은 참가자들로부터 명함, 재직증명서 등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날 10쌍의 참가자들 중 여섯쌍의 참가자들이 커플로 매칭됐다. 부모님이 절에서 만나 결혼했다는 직녀 4호도 자기소개 때 마음에 들었던 견우 6호에게 다가간 끝에 커플이 성사됐다. ‘나는 절로’에 대한 관심으로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참가자 만큼 많은 취재진을 비롯해 많은 방송사 카메라가 모여들었지만 어느새 카메라는 이들의 시야 밖에서 사라졌다. 한 참가자는 “'나는 솔로'에서 카메라 앞에서도 감정을 다 드러내는 게 신기했는데 어느 순간 마이크 앞에서도 서로만 보고 이야기하고 있었다”며 “이제 서울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현실로 돌아가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충남 당진에서 참가해 장거리의 벽을 뚫은 견우 3호는 “원래 천주교인데도 절이 주는 편안함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전했다. 이날 함께 참석한 주형환 저출산고령화위원회 부위원장은 “요새 젊은이들이 만남에 진심인 모습이 반갑게 느껴졌다”며 “'나는 절로'의 노력이 저출생 문제 해결로도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저출생 문제의 실질적인 대책인 남편 육아휴직 시 배우자 육아휴직 연장 등 내용을 담은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이번 국회 회기가 시작하는 대로 재상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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