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0년 넘게 운영해온 '그린 리모델링' 이자지원 사업이 사실상 폐기됐다. 국내 온실가스의 약 25%가 난방 등 건물을 이용하면서 배출되는 것을 감안하면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정부의 탄소중립시나리오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토안전관리원이 추진하는 그린리모델링 이자지원 사업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예산안에서 삭제됐다.
정부는 지난 2013년부터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국토안전관리원을 통해 그린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해 왔다. 기후변화로 건물 에너지사용량이 증가하는 만큼 민간 건축물의 에너지 성능개선을 촉진해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제1차 녹색 건축물 기본계획에 따라 2030년까지 880만 톤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민간(주거 282만 가구, 비주거 20만 동)과 공공(1만 2000동)의 그린 리모델링 목표치도 제시한 바 있다.
국토부는 이에 따라 2014년부터 민간 건축물의 친환경 리모델링 사업에 대해 이자 지원 사업을 진행해왔다. 에너지 성능 개선 비율(절감률)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구조로 최대 연 4% 이자를 지원한다.
금융 연계 모델로 수요처의 금융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어 공공기관부터 주거시설까지 민간의 관심이 많았다. 일례로 2019년 연 3% 이자지원을 받아 사업을 진행한 한국외대 '지속가능한 도서관'은 외피 단열성능을 향상하고 전열교환환기장치를 신설하는 등 그린리모델링 공사 이후 에너지 요구량이 53.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EAN테크놀로지 신사옥 역시 지붕 진공 단열재 적용과 바닥·외벽 등 외피 단열성능을 높이면서 에너지 요구량을 38% 줄이는 데 성공했다.
사업 신청도 2014년 352건(557억 원)에서 2020년 1만 2005건(1322억 원)으로 급증했다. 이후 코로나19 확산과 공사비 상승, 고금리 등 기조가 맞물리면서 △2022년 7217건(903억 원) △2023년 8381건(985억 원) 등으로 다소 줄었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 거래가 줄어들면서 리모델링 수요가 줄어든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국비를 지원해 민간(개인)의 자산 가치를 높이는 사업이라는 지적이 있었는데 여기에 신청 수요까지 줄어들면서 신규 지원용 예산이 올스톱 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예산이 아닌 기금을 지원하는 공공건축물 그린리모델링 지원 사업은 지금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토부는 현재 어린이집, 경로당, 보건소 등에 사업비를 지원하는 공공건축물 대상을 에너지 다소비 시설과 도서관, 복지센터 등 지역 필수 시설로 확대할 계획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수요처의 비용 부담 등으로 노후 건축물의 그린 리모델링 추진이 쉽지 않은 만큼 마중물이 절실하다는 아쉬움이 흘러나온다. 공공건축물의 규모가 작은 만큼 본격적인 탄소 절감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민간 시장에서의 움직임이 활성화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지원이 있었기에 예산이 빠듯한 대학교의 노후 건축물이나 수도원 등 종교시설도 친환경 건축물로 리모델링할 수 있던 것"이라며 "결국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