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일 경제 사령탑 임기를 1년 4개월 만에 마치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관가에서는 최 부총리의 자진 사퇴가 정통 경제 관료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최 전 부총리는 서울대 법대 82학번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법이 아닌 행정”이라는 신념 아래 사법고시 대신 행정고시를 택해 공직에 몸담았다. 서울대 법대를 수석 졸업할 정도로 두뇌가 비상할뿐더러 정책을 설득하는 능력도 탁월해 ‘기재부 천재’ 계보를 잇는 관료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2024년 1월 윤석열 정부의 2번째 경제 부총리로 임명된 뒤 ‘역동 경제’를 기치로 내걸고 각종 정책을 추진했으며 올 1월 기재부 직원들로부터 ‘닮고 싶은 상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부총리로서 뜻을 펼치기에는 여건이 좋지 않았다. 여소야대 국면에 더해 최근 10여 년간 국회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면서 정부의 역할이 점점 위축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며 기재부를 공격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기재부 해체론을 대선 공약으로 내건 상태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2일 “정부와 국회의 권한이 점점 비대칭화되면서 관료들이 소신을 갖고 일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뒤에는 88일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1인 3역’을 수행했다. 경제 현안은 물론이고 사회·안전·국방·외교 등을 모두 도맡아 혼란을 최소화했다.
부총리로 복귀한 후에는 경제 현안 해결에 총력을 다했다. 대외 신인도를 관리하는 데 역점을 기울였고 미국 정부의 이른바 ‘2+2 협상’을 진두지휘하며 관세 폐지를 목적으로 한 ‘7월 패키지’를 마련하자는 협의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13조 8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마련해 국회와 마지막까지 협상을 마무리한 뒤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안이 통과된 것을 끝으로 경제 수장 역할을 마무리 짓게 됐다.
선장을 잃은 기재부는 당분간 김범석 1차관이 장관 직무대행을 수행하게 된다. 김 직무대행은 이날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하고 “기재부 전 직원이 어떠한 상황에도 흔들림 없이 맡은 바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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