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홍콩과 싱가포르가 디지털 채권 규제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는 내용의 아태지역 디지털 금융 보고서를 발간했다. 한국은 보고서에서 언급된 주요 아시아 국가(홍콩·싱가포르·일본·한국) 가운데 유일하게 디지털 채권을 발행하지 않는 곳으로 지목됐다.
올해 1분기 전세계에서 발행된 디지털 채권 규모는 98억 달러다. 연간 기준으로 400억 달러를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다. 2022년 4억 3200만 달러에 불과했던 연간 발행 규모가 3년 새 100배 가까이 폭증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채권은 분산원장기술(DLT)을 기반으로 발행되는 채권으로 전통적인 채권과 동일한 경제적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채권의 소유권 이전과 이자 지급, 원금 상환 등 모든 과정이 블록체인 기반의 스마트 계약을 통해 자동화된 방식으로 이뤄진다.
디지털 채권 발행자는 전통적인 채권 발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수 수수료, 법률 비용, 회계 비용 등의 발행 관련 비용을 현저히 낮출 수 있다. 홍콩금융관리국(HKMA)에 따르면 디지털 채권이 총 발행 비용을 평균적으로 기존 대비 약 1%포인트 절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와 결제 과정이 실시간으로 이뤄져 처리 속도가 절감되는 이점도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 같은 아시아 주요 금융 허브들은 디지털 채권 성장세에 맞춰 규제 정비는 물론 초기 발행 비용 지원을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본 역시 2020년 관련 법 개정을 통해 디지털 채권을 증권 범위에 포함하며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이미 발행 사례도 만들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4년 6월까지 발행된 디지털 채권의 53.7%가 아시아 통화로 발행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만 나홀로 뒤처지고 있다. 규제 가이드라인이 없어 명칭조차 '디지털 채권', '토큰 채권', '채권형 토큰증권' 등으로 혼용되고 있다. 토큰증권 법제화는 수 년째 국회에 계류돼있고 그나마 조각투자에 밀려 디지털 채권에 대한 논의가 없다시피하다.
채권은 기업 운영의 핵심 동력이라는 의미에서 유기체로 비유하면 피와도 같다. 글로벌 디지털 채권 도입 흐름을 놓친다면 한국 경제는 절반의 혈관만 가진 채 뛰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