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이 6일 대법원의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을 두고 “사법 쿠데타의 길을 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제 국회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대법원장이 뭐라고”라며 탄핵소추를 시사했다. 민주당은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4심제와 대법관 30명 증원도 추진한다. 단순한 정치 레토릭이 아닌 것이다.
이 후보는 대선판에서 앞서고 있다. 5일 나온 한국갤럽과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는 다자와 양자 대결 모두 국민의힘 후보를 크게 따돌렸다. 중도 확장성도 보였다. 열흘 전 있었던 민주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의 울림이 컸다. 이념·사상·진영에 얽매일 시간이 없다는 이 후보의 호소에 보수층이 움직였다. 그의 연설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통합과 희망이다. 이 후보의 실용주의에 적지 않은 이들이 공감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 이후 이 후보의 진심(?)은 조금씩 빛이 바래고 있다. 위기 때 본모습이 드러난다고 했던가. 예상치 못한 판결을 받아든 민주당이 허둥대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첫째, 내란 프레임이다.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이 3차 내란을 획책했다고 주장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촉발한 내란은 지난해 12월 14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과 지난달 4일 헌법재판소의 인용으로 1차로 마무리됐다고 봐야 옳다. “가만히 앉아 있던 사람(조 대법원장)이 무슨 내란이냐”고 하는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말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내렸다고 무차별적으로 내란 프레임을 덧씌우는 것은 정치 폭력이자 삼권분립을 무시하는 처사다.
둘째, 전체주의의 그림자다. 김민석 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은 “김구·조봉암·장준하·노무현을 잃었듯 이재명을 잃지 않을 것”이라며 “김대중을 지켜 대통령을 만들었듯 이재명을 지켜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 후보가 김구·조봉암·장준하 선생과 같은 반열에 있는지는 평가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대통령은 국민이 선택하는 것인데 법원이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개입을 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헌법의 틀 안에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헌법은 최고법원으로 대법원을 두고 법관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도록 보장하고 있다. 지금은 헌법적 가치를 내세우면서 또 다른 헌법 조항을 외면하고 파괴하려는 시도가 반복되고 있다. 비상계엄이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었기에 전 국민이 맞선 것이지 특정인을 지키기 위한 것은 아니다.
셋째, 공화국 가치의 부정이다.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했다. 민주국과 민주공화국은 다르다. 헌법은 다수결에만 의존하는 ‘민주국’이 아닌 소수를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민주공화국’에 방점을 뒀다. 소수가 다수를 불합리하게 지배해서는 안 되지만 다수가 소수를 억압해서도 안 된다.
이 후보는 이날 민주공화국을 언급하면서도 대법원을 불의한 세력으로 낙인찍고, 소수의 특권층이 황당한 세계를 만들어낸다며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다. 윤석열 정부의 재의요구권 행사가 지나친 측면이 있지만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포함해 30번이 넘는 탄핵 시도와 사법 체계 부정 역시 공화국의 의미와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있다.
며칠 전 은퇴 의사를 밝힌 워런 버핏 미국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썰물이 되면 누가 수영복을 입지 않았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시장이 좋고 유동성이 넘칠 때(밀물)는 보이지 않던 투자 자산의 실체가 경기 둔화 같은 위기(썰물) 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후보에게 다시 한번 썰물이 찾아오고 있다. 물이 얼마나 빠질지 지금은 알기 힘들다. 다만 지금 같은 선동과 협박으로는 그의 ‘우클릭’이 진정성을 갖기 어렵다. 포퓰리즘으로 국민을 잠시 속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오래갈 수는 없다. 대한민국은 제자리에서 묵묵히 일한 5000만 국민과 기업, 관료가 이끌어온 국가지 어느 한 정치인이 만드는 나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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