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총 2000억 위안(약 39조 원) 규모의 신규 원자로 10기에 대한 건설을 승인하면서 원전 확대 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금 추세라면 2030년까지 중국의 원전 발전 용량은 미국과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를 것이 확실시된다. 인공지능(AI) 개발 경쟁에 따른 에너지 수요 폭증이 맞물리면서 ‘탈원전’에 앞장섰던 유럽에서도 원전 부활 움직임이 활발하다.
1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중국 국무원은 리창 총리 주재로 지난달 말 열린 상무회의에서 산둥·저장·푸젠·광둥·광시 등 동남 연안 5개 지역에 총 10기의 원자로를 새로 짓는 내용을 최종 승인했다. 10기 가운데 8기는 중국이 독자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3세대 원자로 ‘화룽1호’로 이는 미국과 프랑스의 기술을 바탕으로 중국 국유기업들이 개량한 모델이다. 나머지 2기는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개발한 ‘AP1000’ 기반의 ‘CAP1000’이다. 이들 원자로의 총 발전 용량은 약 1200만 ㎾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1980년대부터 프랑스 등 해외 기술을 도입해 원전 개발에 나섰지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성을 우려해 신규 인허가를 중단한 바 있다. 그러나 2019년부터 허가를 재개한 뒤 2022년부터는 연간 약 10기 건설을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다.
원전 확대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추진해온 대기오염 저감과 에너지 안보 강화 정책의 일환이다. 특히 중국은 석유의 약 7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에너지 수급의 자립도 제고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시 주석은 2020년 “2030년 이전 탄소 배출 정점을 찍고 2060년 이전에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밝힌 후 원전 정책에 더욱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 같은 정책 하에 지난해 말 기준 중국 내 가동 원전은 57기로 총 발전 용량은 약 5976만 ㎾로 증가했다. 이는 미국·프랑스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다. 지금 추세라면 2030년에는 가동 원전의 총 발전 용량이 1억 1000만 ㎾에 이르는 것은 물론 미국·프랑스를 제치고 원전 설비 세계 1위에 오르게 된다. 닛케이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대형 원전의 건설 비용 급증으로 신규 건설이 정체되고 있는 반면 중국은 국유기업의 연속적인 건설을 통해 노하우를 쌓고 비용을 낮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탈원전으로 방향을 틀었던 유럽에서도 에너지 안보를 위해 ‘원전 회귀’를 선언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벨기에 의회는 전날 20년 만에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자로 신설을 허용하는 내용의 정부 안을 통과시켰다. 국내 발전량의 약 40%가 원전에서 나오는 벨기에는 2003년 원자로를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쇄하기로 결정했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이로 인한 에너지 수급 문제로 2023년 일부 가동을 연장했었다.
덴마크도 40년간 이어온 원전 금지 정책에 대한 재검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라르스 오고르 덴마크 에너지·기후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소형모듈원전(SMR) 등 차세대 원자력 기술이 갖는 잠재적 이점을 분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밖에도 이탈리아가 3월 원자력 기술의 사용을 허용하는 법안을 승인했고 최근 대규모 정전 사태를 겪은 스페인도 원전 폐쇄 계획을 재고하고 나섰다.
원전 부활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한국이 원전 수출 시장에서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전 세계에서 계획·제안된 원전 사업 400여 건을 분석해 “한국이 이 중 43%를 수주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향후 10년간 최대 원전 기술 수출국 중 하나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한때 업계를 선도했던 미국과 프랑스의 경우 비용 및 건설 기간이 늘어난 전력이 있고 현재 강자인 중국·러시아의 경우 서방 국가들이 꺼리는 만큼 한국의 상대적인 매력이 부각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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