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갈등에 따른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중국 기업들이 뉴욕이나 홍콩 증시 대신 싱가포르로 향하는 흐름이 포착된다. 동남아시아 등 신규 시장 개척에 나서면서 지리적으로 인접한 싱가포르의 매력이 부각하는 양상이다.
18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은 중국 본토 및 홍콩에 소재한 최소 5곳 이상의 기업이 싱가포르 증권거래소(SGX)에서 기업공개(IPO) 등 자금 조달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에너지 기업과 헬스케어 그룹, 상하이 기반의 바이오테크 기업 등 업종도 다양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중 무역 전쟁이 격화되면서 동남아시아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중국 기업들의 움직임에 따른 현상으로 읽힌다. 그간 중국 기업들은 나스닥이나 홍콩 시장에 상장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추진했다. 자본 접근성과 브랜드 인지도, 투자자 기반 측면에서 유리해서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미중 무역 갈등이 격화하면서 리스크를 줄일 대체 시장을 모색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미중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에 타격을 입으며 시장 다변화 및 리스크 분산 전략이 중요해진 것이다. 일각에서는 2021년 중국 정부의 압박으로 뉴욕 증시에서 철수한 ‘디디추싱 사태’가 재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은 동남아를 주목하는 기업이 늘었다는 진단이다. EY의 아시아 태평양 IPO 리더 링고 최는 "싱가포르의 정치적 안정성과 지정학적 문제에 대한 중립적 입장이 기업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이라고 짚었다.
싱가포르 증권거래소(SGX)도 주식 시장 강화를 위해 1차 상장에 대한 세금을 20% 환급하는 등 적극적으로 지원책을 내놓으며 글로벌 기업들에 손짓하고 있다. SGX의 글로벌 영업 및 상장 유치 부문 수석 전무이사 폴 드윈은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서 SGX 상장 문의가 급증했다"며 "앞으로 수 년, 수십 년 동안 중국에서 세계로 진출하는 관문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고 싱가포르 상장은 그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만 유동성 부족과 낮은 밸류에이션 등 SGX의 ‘고질병’이 바뀌지 않은 만큼 큰 폭의 성장세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TSMP 로펌 스테파니 윤 티오 변호사는 블룸버그통신에 "SGX의 IPO 유치 자금은 지난 20여년 중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라며 "유동성과 기업 가치, 규제 완화, 투자자 권리 등 복합적인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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