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요 후보들이 공공주택 확대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식과 정확한 공급 물량 등은 내놓지 않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올 2월 서울 강남 일대의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한 뒤 매매가격이 급등하는 등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한 기류가 여전한 만큼 시장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주택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향후 주택 공급 마스터플랜이 나오지 않아 주택 매입 시점에 대한 불안감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주요 후보들이 공공주택 확대에 방점을 두면서 공공주택 사업을 전담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채 압박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1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부동산 공약과 관련해 1기 신도시 노후 인프라 재정비와 서울 도심의 재개발·재건축 용적률 상향 및 분담금 완화를 핵심 방안으로 내세웠다. 또 주택 시장 안정화를 위해 고품질 공공임대주택과 공공임대 비율의 단계적 확대를 약속했다. 구체적인 공급 물량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올 4월 “임대 시장의 안정을 위해서는 현재 8% 수준인 공공임대주택 비율이 20%는 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4기 스마트 신도시에 대한 구상 또한 내놓았다. 이 후보는 지난달 말 페이스북에 “교통이 편리한 제4기 스마트 신도시 개발을 준비해 청년과 신혼부부 등 무주택자에게 쾌적하고 부담 가능한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언급했다. 윤후덕 민주당 정책본부장은 이와 관련해 “지난 대선 당시 311만 가구를 공급한다고 했는데 제대로 공급이 되려면 5년간 250만 가구는 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청년·신혼부부 등을 대상으로 한 공급 방안을 제시했다. 김 후보는 결혼하면 3년, 첫아이를 낳으면 3년, 둘째 아이 때 3년 등으로 총 9년간 주거비를 지원하는 주택을 매년 10만 가구 공급하겠다는 내용의 ‘3·3·3 청년 주택 공급’안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또 청년, 신혼부부, 육아 부부를 위한 주택을 매년 20만 가구 공급하고 1인 가구 아파트와 오피스텔 공급 역시 확대하겠다고 언급했다. 이와 더불어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권한을 기초자치단체로 이양해 속도를 높이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전문가들은 대선 후보들의 이 같은 공급 방안에 대해 공급 확대 구호만 있을 뿐 실행 계획 등이 빠져 시장의 불확실성만 높일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지난 20대 대선 때는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 측에서 5년간 전국에 270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측에서 기본주택 140만 가구를 포함해 총 311만 가구의 주택을 짓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이와 비교하면 이번 대선에서는 구체적인 수치와 공급 방식은 빠진 상황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난 20대 대선에서 무리한 공급 수치를 제시했던 것에 대한 학습 효과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지방 미분양 물량이 7만 가구가량 쌓여 있는데도 미분양 해소 방안 등이 담기지 않은 것 역시 부동산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담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선 후보들의 주택 공급 마스터플랜이 제시되지 않으면서 신혼부부 등 주택 실수요자의 불안감 또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부동산R114 등에 따르면 내년 서울의 아파트 입주 물량은 2만 4400가구 수준으로 올해(4만 6710가구)의 절반 수준에 그칠 것으로 우려된다. 공급 가뭄으로 가격 불안의 위험이 큰 만큼 향후 공급 추이 등에 대한 시장의 관심도가 높아진 상황이다. 부동산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의 재건축·재개발 완화 방침에도 국회에서 관련 법 논의가 이뤄지지 못해 주택 공급이 늘지 못했다”며 “주택 공급을 확대할 구체적 방안을 내놓지 않는 이상 시장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후보와 김 후보의 공공주택 확대 방침이 LH의 부채 압박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한다. LH는 지난해 말 기준 총부채 규모가 160조 1000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7조 2000억 원 늘었다. 특히 2020년 이후 공공전세주택 매입 등 공공사업을 확장하면서 부채 규모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상황이다. LH가 기획재정부 등에 제출한 중장기 재무관리 계획에 따르면 2028년 부채가 227조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LH가 부실화하면 결국 세금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이를 막기 위해 주거 취약 계층 위주로 공공주택을 공급하고 나머지 주택은 민간 임대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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