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노 막 감독은 스스로를 반복하지 않는 창작자다. 그의 이름을 알린 공포 영화 ‘강시: 리거모티스’ 이후 수많은 속편 제안이 쏟아졌지만, 그는 이를 거절하고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범죄 스릴러 드라마 ‘풍림화산’(Sons of the Neon Night)이다. 이 영화는 단순한 범죄 드라마를 넘어 정체성과 윤리, 관계의 균열을 탐색하는 장르 실험의 결정체다. 2025 칸 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초청작으로 1994년 눈 덮인 무정부 상태의 홍콩 코즈웨이베이가 배경이다. 17일 칼튼 호텔 칸에서 만난 주노 막 감독은 “토론토 영화제에 갔을 때였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호텔 창밖을 바라보다 한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게 이 영화의 시작이었다”고 밝혔다. 금성무(카네시로 타케시)의 복귀가 반갑고 동기가 불투명한 고용 클리너 청 만싱을 연기한 고천락(루이스 쿠)의 액션이 영화를 이끌어간다. 레이디 맥베스를 연상시키는 모레톤의 아내 라우 시안(가오 위안위안), 부패한 베테랑 형사 티 만킷(토니 룽 카 파이)도 눈길을 끈다.
주노 막 감독은 이 영화를 단순한 액션 영화로 보지 않는다. 장르의 외형을 차용하지만, 그 너머로 가는 이야기를 꿈꾼다. 그는 “액션이 많고 대사도 많지만, 본질적으로는 범죄 드라마이다. 단순한 팝콘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영화에는 지적인 깊이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는 정교하게 구축된 캐릭터다. 그는 인물을 종이 위의 설정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존재로 대한다. 그는 “캐릭터들은 고유한 과거와 세계를 가진 진짜 인간처럼 움직여야 한다. 그들의 행동은 모두 그 세계 안에서 논리적으로 작동한다“며 “영화 속 세계에는 고유의 날씨와 지리, 규칙이 있다. 그 안에서 인물들이 어떻게 생존하고 적응하는지가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홍콩 배우이자 감독인 주노 막은 동아시아 영화에서 장르적 고정관념이 작동하는 방식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그는 전작인 ‘강시: 리거모티스‘에 이어 ‘네온 나이트의 아들들‘ 역시 장르 간 혼합과 재구성을 통한 실험이라며 “장르가 제작자에게 족쇄처럼 작용할 때가 많다. 유령 영화는 무조건 무서워야 한다는 식이다. 그런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를 ‘의미를 주는 매체’라기보다 ‘관객과 함께 여정을 떠나는 수단’이라고 본다.
막 감독은 “10년이 걸려 완성된 작품이다. 인물 간의 관계, 가족, 충성심, 배신 같은 요소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관객도 이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며 체험해주었으면 한다”며 ”드라마가 중심이고 액션을 하나의 구성 요소일 뿐“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했던 과거에서 비롯된 그의 감각은, 사운드트랙과 비주얼, 감정이 결합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영화의 톤과 흐름을 사운드로 먼저 설계하며, 장면의 감정을 시각 이전에 ‘들려주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는 “사운드는 저에게 공간과 정서를 먼저 설계하는 도구이다. 음악은 저에게 촬영 이전에 감정을 정리하고 시공간을 설정하는 수단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분위기 속에서 배우들이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의 영화 음악에 대한 철학은 류이치 사카모토와의 마지막 협업에서도 드러난다. 촬영 중반, 그는 문득 사카모토를 떠올렸고 도쿄에서 직접 만나기를 제안했다. 주노 막 감독은 “류이치 사카모토가 하드 드라이브를 가득 들고 호텔로 왔다. 우리는 피아노가 있는 스위트룸에서 6시간 동안 작업했다. 정말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고 당시 사카모토는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추운 세계관을 가진 이 영화에 깊이 공감했다고 밝혔다. 불행히도 영화 후반 작업 중 사카모토는 세상을 떠났다. 막 감독은 그를 위해 믹싱과 마스터링까지 직접 맡았다. 그는 “사카모토는 ‘레버넌트’ 이후 차가운 풍경에 끌리고 있었고, 우리가 만든 이야기에도 몰입했다”며 “그의 마지막 작업을 함께할 수 있었다는 건 정말 영광이었다. 이 영화를 통해 그와의 시간도 함께 기억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네온 나이트의 아들들‘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이자, 예술적 도전의 산물이며, 주노 막 감독이 장르의 틀을 넘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주노 막 감독은 “영화는 어떤 답을 주는 매체라기보다, 함께 걸어가는 여정이다. 그 여정에서 관객이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범죄 스릴러 드라마 ‘네온 나이트의 아들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다. 주노 막 감독의 비전 아래, 이 세계는 장르를 넘어서는 정서적 복합성과 내러티브의 층위를 품고 있다. 그는 반복이 아닌 진화를 선택한 감독이며, 그 진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은선 골든 글로브 재단(GGF)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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