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시의 3대 주가지수가 보합권 내 혼조세로 마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는 감세안이 미국 의회 하원을 통과하자 주식과 국채 시장은 불확실성 해소라는 긍정적 측면과 감세 법안에 따른 재정적자 추가 악화 가능성이라는 부정적 측면을 동시에 평가하면서 불안정한 흐름을 보였다.
22일(현지 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1.35포인트(0.00%) 내린 4만1859.09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2.60포인트(-0.04%) 떨어진 5842.01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53.09포인트(+0.28%) 오른 1만8925.73에 장을 마감했다.
트럼프 감세 법안 통과 후 국채 매도세 진정…시장 불안은 여전
이날 시장이 주목한 가장 큰 이벤트는 트럼프 감세법의 하원 통과였다. 하원은 이날 본회의에서 감세 법안인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해, 찬성 215표 대 반대 214표로 가결처리해 상원으로 넘겼다.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에서도 반대표 2표, 기권표(재석) 1표가 나왔다. 민주당 하원의원은 전원 반대표를 던졌다.
법안은 2017년 감세법에 따라 시행됐다가 올 해 말 종료가 예정된 각종 감세 조치를 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인 소득세율과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표준소득공제와 자녀세액공제 확대 등이다. 지난해 대선 기간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했던 팁과 초과근무수당에 대한 면제, 미국산 자동차 구입시 대출 이자에 대한 신규 세액공제 허용 등도 포함됐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이 법안이 상원에서 최종 확정될 경우 연방 정부 재정적자가 향후 10년간 3조8000억달러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날 하원 통과로 후속 절차로는 상원 가결과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이 남았다.
법안 통과 이후 미국 장기 국채 금리의 오름세와 달러 가치의 하락세는 일단 멈췄다.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증시 종료 시점 3.8bp(1bp=0.01%포인트) 내린 5.052%에 거래됐다. 10년 물 금리는 6.2bp 내린 4.543%를 기록했다.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전날 99.56에서 소폭 상승해 99.9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시장이 일단 법안을 둘러싼 의회의 불확실성은 줄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인컴리서치앤드매니지먼트의 스콧 파이크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국채 금리가 정점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없다”며 “다만 매수자들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월가 “감세법, 단기적으론 GDP에 기여, 장기적으로 국채 금리 상승”
법안이 담고 있는 내용과 재정에 미치는 부담을 고려하면 이날 국채와 달러의 하락 진정이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애초 이 법안은 공화당 내 강경파와 온건파의 주장이 부딪히면서 통과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다만 막판에 메디케이드(의료복지) 수급 대상자 근로요건 강화 시기를 2029년에서 2026년 12월로 앞당기는 등 재정 지출을 더 줄이라는 강경파의 주장을 반영해 수정이 이뤄졌다. 뉴욕 등 세율이 높은 지역 의원들의 요구에 따라 주·지방세(SALT) 공제 상한을 현행 1만 달러에서 4만 달러로 4배 인상하는 내용도 추가했다. 다만 텍사스 등 국경지역 의원들의 요구를 반영해 국경 주에 120억 달러의 보조금을 편성하는 재정 확대 조치도 막판에 들어갔다.
이는 결국 법안의 수정 방향이 시장이 원하는 재정 긴축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법안 통과를 목적으로 한 정치적 흥정에 따른 수정이었다. 이에 시장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는 이날 폭스와의 인터뷰에서 “시장은 재정 정책을 주시하고 있다”며 “내가 만나본 금융 시장 관계자들은 모두 감세 법안을 주시하고 있고, 재정 긴축을 위해 훨씬 더 많은 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는 “투자자들은 채권을 매수하려면 더 낮은 가격을 원하고, 따라서 더 높은 금리를 원하게 될 것”이라며 추가 국채 매도 가능성을 짚었다.
아젠트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제드 엘러브룩은 법안의 효과에 대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으로, 장기적으로는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단기적으로 감세 법안이 통과되면 세금이 줄고 국방비 지출이 늘면서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봤다. 반면 그는 “예산 적자는 오랜 기간 동안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정상으로 돌아갈 조짐이 없다”며 “국채에 대한 매력과 신뢰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증시의 흐름도 이런 불확실성을 반영하고 있다. 나스닥은 이날 장중 1% 가량 상승했지만 장 마감 30분을 앞두고 대부분 상승폭을 줄였다. 이 시간 동안 S&P500 지수와 다우지수는 0.5% 상승에서 하락 전환했다. 시장에서는 여전한 불확실성을 고려한 차익 실현 매도세로 보고 있다.
통상 달러와 반대로 움직이는 비트코인 역시 이날 달러가치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일중 최고가인 11만1986.44달러를 기록했다. 지금은 최고가에서 약 1000달러 가량 하락한 11만983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UBS 글로벌 자산운용의 마크 헤펠레 CIO는 “무역 정책과 재정 전망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다시 부각되면서 시장의 변동성이 되살아났다”며 “국채 수익률이 높고, 관세 및 예산 리스크가 주목받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변동성이 계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美 5월 서비스PMI 호조…월러 “관세율 10% 정도면 연준 금리 인하 가능”
미국 경제 지표는 여전히 호조세를 보였다. 아직 관세의 여파가 드러나지 않았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은 5월 미국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예비치가 52.3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2개월래 최고치다. 5월 제조업 PMI 예비치도 52.3으로 전월치 50.2를 상회하며 2022년 6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용도 특이한 흐름을 보이지 않았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5월 17일로 끝난 한 주 동안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계절 조정 기준 22만700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주 대비 2000건 줄어든 것이다. 시장 예상치는 23만명이었다.
연준의 월러 이사는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가 10% 수준에서 안정될 경우, 연준은 올해 하반기 금리 인하를 단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관세가 7월까지 마무리되고 더 이상 확대되지 않는다면, 하반기 경제는 금리 인하를 수용할 만한 환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일 것으로 본다”면서도 “행정부가 다시 고율 관세로 복귀할 경우, 인플레이션 압력은 훨씬 커지고 연준의 단기 금리 정책에 심각한 제약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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